소설

▩[단편]저항의 냄새

개마두리 2013. 1. 5. 19:07

 

- 알제리 작가인 ‘압듈 아지즈 가르몰 (Abdel Aziz Gharmoul)’의 단편소설

 

초인종이 두 번이나 울렸고 그 울림이 아파트 전체에 한참 동안이나 울려 퍼졌다. 여느 때처럼 그는 방문객이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바깥 복도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키가 크고 말쑥하게 변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묘지에서『꾸란』을 외워서 읊는 사람처럼 엄숙해 보였다. 그 방문객은 그에게 총을 겨눈 채 머리를 약간 갸우뚱하고 “당신을 죽이러 왔소!”라고 했다. 그는 야릇한 미소를 띠면서 그 방문객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는 목욕탕에 가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와도 되는지 물었다. 평상복보다는 축제용 의복을 입고 죽음을 맞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방문객은 거실에서 조용히 기다렸으며, 긴 코트 주머니 안에 있는 권총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방문객은 지친 시선으로 그의 집에 놓여 있는 수수해 보이는 기구들을 바라보았다. 집주인은 먹구름 속에서도 이슬람교의 신령의 도움으로 살아왔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 집은 벽에 풍자만화가 여러 개 걸려 있을 뿐 평범한 집이었다. 이 풍자만화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를 계속 괴롭혀 온 것이었다. 그것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나라 대통령은 풍자만화가의 손가락을 염산에 담아 태워 버리겠다고 말했다. 또 벽에는 풍자만화가 자신과 사회의 저명인사, 정치가, 스포츠 영웅들,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심지어 그 풍자만화가와 전 대통령이 따뜻하게 악수하는 사진을 넣은 액자도 있었다.

 

거실 구석에는 신간으로 보이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 책 반대편에는 텔레비전과 여행용 가방과 접이식 침대가 있었다. 경찰은 3개월에 걸쳐 국제 경찰 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 보안 기관에 도움을 받아 이 풍자만화가의 체포에 전력을 다했다. 그의 혐의 목록은 매일 점점 더 늘어났다. 체포 기관의 책임자는 오존층이 파괴된 것까지 모조리 그 풍자만화가의 책임이라고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대통령을 그렇게 괴롭혔던 갈겨 쓴 글의 힘이 어떤지 당신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날, 수사팀 책임자는 약을 여러 봉지 수입차에 넣고는 언론사에 찾아가 말했다.

 

“이것으로 그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있음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젊은 기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묻자 그는 대답했다.

 

“그가 모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단 1그램의 마약도 밀수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번 건은 확실합니다.”

 

수사팀 책임자인 그는 풍자만화가를 찾기 위해 모든 곳을 다 수색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나, 이슬람교 사원(아랍어로는 ‘모스크’ - 옮긴이)이나, 조그만 저녁 집회에서 그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매우 주의 깊게 들었다. 빌딩 엘리베이터를 탄 상태에서도 그는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뛰어갈 태세였다. 또한 소위 풍자만화가의 후원자들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 마을 어디라도 다닐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저항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수색대원을 안내해 줄 잘 훈련된 독일 마약견에게 그 풍자만화가의 옷을 주는 등, 그를 찾는데 주력해 왔다.

 

그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 누가 나를 죽이라고 당신을 보냈냐?”와 같은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갑작스런 공격이나 탄알이 날아올까 두려워, 그는 앉아 있는 위치를 계속 바꾸었다. 하지만 수사팀 책임자의 깊은 내면에선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으며 말을 하고 싶은 욕구마저도 없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는 행동을 주저했다. 그는 그 풍자만화가를 죽여야 할지, 그를 영창에 보내야 할지, 아니면 보상금을 받고 일찍 경찰직을 그만 두어 보통 인간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지 생각해보았다.

 

풍자만화가의 은신처를 알아낸 후, 그는 이런 식으로 확신이 흔들려서 괴로워했다. 그를 죽이는 것이 나라에 득이 되겠지만, 다른 한편 다음과 같이 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당신은 이 나라에서 죽음을 충분히 보아왔고 이런 사람, 즉 풍자만화가와 같은 사람을 많이 죽여도 그런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그는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자신도 원치 않는 이 피비린내 나는 반도로부터 멀리 떠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스쳐갔다. 풍자만화가에게 총을 주어 자살을 하게 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영원히 죽는 게 될 것이다.

 

그 수사팀 책임자는 풍자만화가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검은 안경을 끼고서 살찐 고양이들 앞에서 연설하는 물렁한 젤리처럼 보이는 사람을 그린 풍자만화 앞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풍자만화 아래의 해설문에는 “나를 선출해 주시오, 그러면 그 생쥐들이 당신을 추적하지 못하게 할 법령을 만들어 줄 것이오.”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풍자만화에도 똑같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 풍자만화 속에서는 신문을 거꾸로 들고, 대통령에 대한 그날 아침 기사를 못마땅해 하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풍자만화에선 옷을 입은 사람의 형체는 없고 군제복만 그려져 있었다. 그 옷은 의자에 걸쳐져 있었으며 소매가 가슴 쪽으로 접혀 있었다. 대통령이 연설할 때 주로 취하는 포즈였다. 이 그림을 보면서 그는 “이 그림 제목은 ‘할 말 없음’이네.”라고 중얼거렸다.

 

그 벽 아래 또 다른 풍자만화가 있었는데, 앞의 풍자만화에서 본 제복과 같은 제복이 모자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권총 끝에 그의 혀가 붙어 있었으며, 이 그림에도 “할 말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사하게 보이는 많은 풍자만화들이 날짜 표시도 없이 제멋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어쨌든 이 풍자만화들은 그를 즐겁고 기쁘게 해 주었다. 이 풍자만화가에게 권총을 주어 자살하라고 했다가 그 총으로 오히려 자신을 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런 생각을 그만두고 희생자를 불러내면서 “내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소!”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 대꾸도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음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수사팀 책임자는 앞에 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책을 집어 한 권씩 던졌다. 보기에 힘들 정도로 작은 글씨체로 쓰여져 있었지만 책의 사이즈는 모두 큰 것들이었다. 그는 책들을 다시 순서대로 놓으면서 일반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이고 우리나라는 이런 책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우리나라는 매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하지. 5년마다 총선거 국민투표를 개최하지. 다른 나라처럼 국회도 있지. 사람들이 서점에서 잘 사지도 않는 이런 책들에 대해 왜 염려를 하지? 대통령, 군대 총사령관, 국회의원, 고위 관직자들을 혼란시킬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책, 그런 불온한 책이 여기 그의 책 가운데 어디 있다는 거야? 이상한 일이군!”

 

그는 사회 저명인사들, 여기에서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인 영화배우, 자선 단체 사람들, 올림픽 운동선수들, 심지어 잘 알려진 국회의원과 함께 찍은 풍자만화가의 사진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사진의 인물들은 공공 도로에서 우스꽝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대통령의 친구들이고 전 대통령은 - 그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 대통령의 친구는 아니었다.

 

수사팀 책임자는 군용 침대와 비슷한 접이식 침대에 눕고 싶어졌지만 사람을 죽여야 하고 따라서 서 있어야만 한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너무 오래 끌지 말고 나오시오. 당신을 죽여야 하고.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오.” 안에서 “기다리시오, 나가니까.”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수사팀 책임자는 그와 똑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죽는 게 두렵지 않소?”

 

그 집 어딘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왔다.

 

“당신과 우리 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삶보다 죽음이 더 잔인하진 않을 것입니다.”

 

수사팀 책임자는 텔레비전을 켰는데 여느 때처럼 재미있는 게 별로 없어서 다시 텔레비전을 껐다. 그는 뒤에서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를 듣고서 머리를 돌렸다. 그것을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풍자만화가는 알몸으로 서 있었다. 풍자만화가는 안경을 쓴 채 그의 눈 앞에다 만화를 그리는 데 사용하는 펜을 흔들고 있었다.

 

“내세에서 당신의 어리석음을 계속 비웃을 거요.”

 

그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면서

 

“당신은 시체가 소파 아니면 …… 어디에 놓여지길 원합니까?”라고 물으며 접이식 침대를 보았다.

 

풍자만화가는 무심한 몸짓으로 손을 들어 벽에 걸려 있던 그림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면서

 

“당신이 떠나기 전 이 그림으로 나를 덮어주고 싶어질 거요. 날씨가 추워질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 김진옥 (한밭대학교 영어과 교수) 옮김

 

* 출처 :『아랍 단편소설선』(살와 바크르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글누림 펴냄, 서기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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