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

개마두리 2012. 10. 30. 20:11

 

온 동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

 

거리는 미친놈을 보러 온 구경꾼들로 꽉 차 있었다. 먼저 경찰서에서, 그 다음에는 치안국(治安局)에서 경찰들이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미친놈의 어머니가 미친놈에게 애원했다.

 

“얘야, 아들아, 어서 내려오너라. 착하지!”

 

그러자 미친놈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장(里長) 안 시켜주면, 뛰어내릴 거예요!”

 

구급대원들은 미친놈이 뛰어내리면 받쳐주려고 캔버스를 펼쳤다. 구급대원 아홉 명이 천 끄트머리를 잡고 공동주택 주위를 도느라 진땀을 흘렸다.

 

경찰서장이 반은 협박조로, 반은 달래는 조로 그를 얼렀다.

 

“이보게, 부탁이니 제발 내려오게!”

 

“이장 시켜주면 내려간다니까요! 안 그러면 뛰어내릴 겁니다!”

 

아무리 부탁하고, 애걸복걸하고, 위협해도 소용없었다.

 

“이봐, 정말 안 내려올 거야!”

 

“날 끌어내리려고 하지 말고, 댁들이 올라오지그래요!”

 

군중 (속에서 - 옮긴이) 한 사람이 말했다.

 

“그래, 자네를 이장 시켜줌세.”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안 될 말이지, 미친놈이 어떻게 이장을 해?”

 

“아니, 뭐 진짜로 시켜준다는 말이 아니잖나!”

 

그러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말했다.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농담으로라도 그건 안 될 말이지.”

 

“어쩌면 내려올 수도 있잖아요 …….”

 

“안 내려와. 저런 놈들은 내가 아주 잘 알지. 한번 올라갔다 하면 절대 내려오지 않아.”

 

“그래도 일단 내려오게는 해야 하잖아요.”

 

“안 내려온다니까!”

 

밑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자넨 이제 이장이야, 그러니 내려오라고!”

 

그러자 미친놈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안 내려가요. 시(市)의원 시켜주지 않으면 뛰어내릴 거예요!”

 

그러자 노인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거봐, 내가 뭐랬나?”

 

“원하는 대로 해주지요, 뭐.”

 

“뭘 시켜줘도 안 내려올 거야. 일단 지붕으로 올라갈 정도로 미쳤다면, 절대 내려오지 않아.”

 

경찰서장이 말했다.

 

“알았네, 알았어. 자넬 시의원 시켜주지. 그러니 이제 내려오게나. 친구들을 그만 기다리게 하고.”

 

“싫어요! 시장(市長) 시켜주면 내려갈 거예요!”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봤지, 봤지! 이제는 절대 내려오지 않을걸!”

 

구급대장이 땀범벅이 되어 말했다.

 

“시장이면 어떻습니까? 까짓 것 시켜줍시다.”

 

그러고는 두 손을 확성기 삼아 위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자넨 이제 시장이야! 어서 내려와 임무를 시작하게!”

 

그러자 미친놈이 신바람이 나서 말했다.

 

“안 내려가요! 미친놈을 시장 삼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무슨 할 일이 있겠어요! 안 내려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줘야 내려오겠나?”

 

“장관 시켜주면 내려가지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의논을 했다.

 

“알겠네, 자넨 이제 장관이야! 그러니 내려와! 모든 사람들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이나?”

 

그러자 미친놈이 놀리듯 말했다.

 

“안 내려가요! 미친놈을 장관 시켜주는 사람들한테 내가 왜 내려가요!”

 

“이보게, 자넬 장관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나. 여기 다른 장관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자, 내려오게.”

 

“뻥치지 마시지! 내가 내려가면 정신병원에 집어넣을 거잖아! 난 안 내려가!”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여보게들, 헛수고 말게나. 저 사람은 절대 내려오지 않네. 난 저런 미친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아. 당신들도 장관 시켜주면 남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을걸.

 

미친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날 수상(首相)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뛰어내릴 거야!”

 

“알았네, 자넨 지금부터 수상이야!”

 

모두들 이렇게 말하자 노인이 대꾸했다.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니까.”

 

미친놈은 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날 왕으로 만들어주면 내려가지! 그렇지 않으면 뛰어내릴 거야.”

 

가만히 두고 보니, 노인이 한 말이 모두 옳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할까요? 왕으로 만들어줄까요?”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네. 이제는 그가 원하는 걸 모두 들어줘야 할 판이야. 어차피 수상이 되었으니까.”

 

“이봐, 자넬 왕으로 대우해줌세. 그러니 이제 그만 내려와!”

 

그러자 지붕에서 신이 난 미친놈이 말했다.

 

“안 내려갈 거야!”

 

“뭘 더 원하는데? 왕도 시켜줬잖아!”

 

“그래도 안 내려가. 황제로 만들어주면 내려가겠지만 ……. 그렇지 않으면 뛰어내릴 거야!”

 

노인이 말했다.

 

“저놈, 정말로 뛰어내릴걸!”

 

“알겠네. 자넨 이제 황제야. 그러니 그만 내려오게.”

 

그러자 미친놈이 말했다.

 

“당신들 같은 무뢰한들 틈에 나 같은 황제가 있으면 뭐해?”

 

“그러면 뭘 원하는데? 말하면 들어주겠네. 그러니 내려와!”

 

“내가 황제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래, 너는 황제다!”

 

“그럼 난 황제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고, 싫으면 말고!”

 

경찰서장은 화가 났다. “뛰어내리고 싶으면 뛰어내려! 이 세상에 미친놈 하나 사라지는 셈이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구급대장이 노인에게 물었다.

 

“이젠 어쩌지요? 저 미친놈이 절대 내려오지 않을까요?”

 

“내려올 걸세.”

 

“어떻게요?”

 

“기다려보게, 내가 내려오게 할 테니.”

 

노인이 미친놈을 어떻게 내려오게 할지 모두들 궁금했다. 노인은 지붕에 있는 미친놈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 혹시 6층으로 내려오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그러자 미친놈이 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하겠다.”

 

미친놈은 지붕에 뚫린 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서는 6층 창문으로 군중을 내다보았다.

 

“숭고하신 황제 폐하! 5층으로 내려오시겠습니까?”

 

“내 내려가겠다!”

 

모두들 놀랐다. 미친놈은 5층으로 내려왔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그렇다면 4층으로 내려오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미친놈은 4층으로 내려가, 창문으로 군중을 바라보았다.

 

“존경해 마지않는 황제 폐하, 혹 3층으로 내려오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그러고말고!”

 

이제 미친놈은 3층 창문 앞에 있었다. 지붕 위에서처럼 신바람이 나 있지도 않고, 장난도 치지 않았다. 그는 진짜 황제처럼 근엄한 모습이었다.

 

“존경하옵는 황제 폐하, 2층으로 내려오시겠습니까?”

 

“그래, 그리하겠다.”

 

그는 2층으로 내려왔다.

 

“숭고하신 황제 폐하, 1층으로 내려오시지요.”

 

드디어 미친놈이 1층으로 내려와 거리로 나왔다. 그는 이제 군중 사이에 있었다.

 

그는 곧장 노인 곁으로 가서 노인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당신도 참으로 미친놈이오. 미친놈만 미친놈을 알아보지.”

 

그러고는 경찰서장에게 말했다.

 

“자, 날 결박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시오. 미친놈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이제 배우셨소?”

 

경찰서장이 미친놈을 데려가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노인을 에워쌌다.

 

“어르신, 어떻게 이런 묘안을 내셨습니까?”

 

“뭐, 쉽진 않았지. 우리 모두는 이 정치판에서 닳을 대로 닳았지 않나!”

 

그러고는 가슴을 펴며 덧붙였다.

 

“아, 지금 내 다리만 온전했어도, 지붕으로 올라갔을 텐데. 그렇게만 되면 아무도 날 아래로 끌어내리지 못할 텐데 …….”

 

- 아지즈 네신 선생의 단편소설

 

* 출처 :『일단, 웃고나서 혁명』(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푸른숲 펴냄, 서기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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