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해방정국 움직인 족청계, 반공/반미 함께 주장했다

개마두리 2013. 1. 17. 10:18

 

책『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일 역사학자 후지이 ‘해방 8년’ 연구

 

- “자유민주주의 토대로 건국됐다는 뉴라이트 거짓 주장 때문에 쓴 책”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반공 = 친미’란 도식에 익숙해져 왔다. 그런데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 때 ‘힘깨나’ 썼던 정치세력 가운데 ‘반공’과 ‘반미’를 함께 추구하는 세력이 있었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인 일본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41세)는 최근 펴낸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를 통해 1946년 해방 공간에서 만들어진 단체인 ‘족청’(조선민족청년단)과 이에 영향받은 파벌들인 ‘족청계’를 지목한다.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라는 부제를 단 책 서문에서 지은이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토대로 하여 건국됐다.’는 뉴라이트의 거짓 주장 때문에 쓰게 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족청은 이범석/안호상/양우정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해방 공간에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급격히 세를 불려 이승만의 정치적 파트너로 성장했다. 특히 이승만이 내세웠던 ‘일민주의’는 족청 세력이 실질적으로 만들어낸 이념이다.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삼아 반공산주의와 반자본주의를 동시에 내세우고,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 특징이다.

 

지은이는 신문 자료, 각종 보고서 등 당시 사료들을 꼼꼼히 풀어 읽으면서, 그동안 ‘이승만 - 이기붕’은 많이 연구됐지만, 족청계 지도자인 이범석이 이승만과 형성한 권력 블록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승만 초기 정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족청계는 파시즘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다른 포퓰리즘적(대중영합적/인기영합주의적 - 옮긴이) 대중민주주의를 추구했다는 견해다. 그러나 족청계는 1953년 이승만을 추종하는 자유당이 의회정당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권력 중추부로부터 축출됐다.

 

족청계의 짧은 부침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은이는 족청계의 존재가 “냉전 질서가 한반도에 관철되기까지 시간차가 있었기에” 해방 뒤 대한민국이 무척 “유동적”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유동성 때문에 ‘국가사회주의’라 불릴 정도의 경제 조항이 제헌헌법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자유민주주의’등 50년대 이후 냉전 질서에 적용되는 이념적 구도를 해방 공간의 정치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 최원형 기자

 

-『한겨레』서기 2013년 1월 16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