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하여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심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李相和) 시인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