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 ‘책읽는 서울 함께 만드는 시민모임’ 안찬수 대표
‘책읽는 서울을 함께 만드는 시민모임’이 13일 책 읽기 플래시몹 행사를 열었다. 인
터넷(순우리말로 ‘누리그물’ - 옮긴이)과 휴대전화(스마트폰) 등을 통해 서로 모르
는 불특정 다수가 자발적으로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모여, 목표로 정한 행
동을 취한 뒤, 곧 흩어지는 플래시몹.
이번 행사에서 정해진 장소는 서울 도심 청계광장이었고, 행동 목표는 책 읽기였다.
지난해 결성된 이 모임의 안찬수 대표(51세) 14일 “책 읽기 문화를 확산시키고, ‘책
읽는 도시 서울’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발산하기 위한 이 행사는 성공적”이라며 매
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이번 플래시몹은 메르스 때문에 모이는 건 포기했다. “한자리에 모이지는
않되, 자신이 읽고 싶은 책 1권과 다른 시민들에게 책 읽기를 권유하는 표어나 흥미
를 불러일으키는 분장을 하고, 서울 각 지역에서 자발적인 플래시몹을 펼친 뒤, 이
를 사진으로 찍어 ‘책 읽는 서울을 함께 만드는 시민모임’ 페이스북(www. faceboo
k.com/bookcitizen)에 게시하거나 이메일(seoulrd@gmail.com)로 전송하는 방식”
으로 행사 내용을 바꿨다.
이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온갖 사람들이 곳곳에서 찍어 보낸 수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안 대표는 “코흘리개 꼬맹이들부터 어른까지 사진들을 계속 올리고 있다.”면
서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회 독서운동을 주도해온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책 읽는 사회문화
재단’(‘책사회’)의 사무처장 자리를 10년 넘게 지켜오면서 이번 행사도 기획한 안 대
표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그만큼 책 읽기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우리 사회
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성이란 게 없다. 끊임없는 형성 과정이다. 그걸 감당할 시민 세력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타살당하든지 자살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책 읽는 사회를 만들
어야 한다.“ 이것이 책사회를 이끌어온 도정일 대표의 신념이자, 곧 자신의 신념이
라고 했다.
“인구 감소, 고령화 사회에서 기계화/자동화 또한 피할 수 없을 텐데,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악기 다루기 같은 사람 손노동과 책 읽기다. 과거에는 오랜 경험이 지혜
를 창출했고, 그래서 질문을 어른들이 던졌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게 된다. 스스
로 질문을 던지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럴 때 책 읽기는 필
수적이다. 책 읽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곧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짓이다.” 그런데
이 나라 망하게 하는 짓을 나라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게 안 대표의 생각이다.
“가구당 도서구입비가 계속 줄고 있다. 왜 주는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간판을 따기 위한 입시
과열과 우승열패식의 과도한 경쟁 탓이다. 나라의 힘 가진 자들은 그게 자신들 기득
권 유지에 유리하니까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수한다. 정부도 고칠 생각이 없다. 책
읽기는 나라를 만드는 기반 중의 기반이다. 이건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로 갈라서
따질 일이 아니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 발표를 보면,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2만 2123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줄었다. 한국출판저작권 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1분기
기준으로는 2003년 이래 최저치다. 게다가 물가상승을 고려한 실질 도서구입비는 1
만 877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1%나 줄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메르스 창궐에 우리 사회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고 있지만, 이는 공적 투자 영역
인 공중보건 인프라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인프라 필요성과 투자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려면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판
단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세력, 제대로 된 정당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
인들을 창출해야 한다. 서구 열강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격변기를 헤쳐갈 수 있는
나름의 내성들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에겐 그게 아직 없다. 우리는 아직 그런 차원
에서 국민적 책읽기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정부가 내세운 ‘문화 융성’도 그 관건이
되는 건 책이고 독서다.”
1996년에 첫 시집『아름다운 지옥』을 낸, “책만 보던 문학도”였던 안 대표는 창작
과 비평사 편집, 강 출판사 기획실장 등을 거쳐 2004년 8월 책사회 사무처장이 된
이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구호를 내건 <문화방송> 책 읽기 캠페인 프로그
램 <느낌표>와 뒤이은 ‘기적의 도서관’ 짓기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2003년 순천, 제천, 진해 3곳을 시작으로 이듬해 서귀포, 제주, 울산 북구, 청주, 그
리고 금산, 부평, 정읍, 김해로 이어졌고, 오는 7월 30일 서울 도봉구에 12호관을 개
관하는 ‘기적의 도서관’ 운동은 “주민과 지자체가 참여하는 유치과정, 그리고 개관
이후의 성과를 통해 해당 지역 자체가 바뀌고 유치 도시의 품격이 높아지는 변화를
일궈냈다.”고 그는 자부했다.
이와 더불어 책사회 활동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사업이 매년 신생아 12만 ~ 13만명
에게 생애 첫 선물로 책 꾸러미를 전달하는 ‘북스타트’ 운동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북스타트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재원은 각급 도서관과 지자체
의 지원, 그리고 풀뿌리 모금이다.
-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겨레』서기 2015년 6월 1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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