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세 가지 질문

개마두리 2015. 9. 20. 15:33


깊은 산 속에 ‘라 르얄’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의 원장은 아주 태평스런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이 수도원에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도원장은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수도원장은 매일 조금씩 뚱뚱해졌습니다. 수도원장의 옷은 조금씩 늘어나, 이젠 커다란 천막처럼 커져 버렸습니다.


한편, 그 나라(라 르얄 수도원이 있는 나라 - 옮긴이)의 왕은 매일 늘어나는 일거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줄기는커녕, 책상 위에는 매일 일거리(여기서는 왕이 몸소 읽고, 결재하고, 서명해야 하는 서류들 - 옮긴이)가 넘쳐났습니다. 그 바람에 왕은 자기 그림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빼빼 말랐습니다. 왕은 의젓하게 두 손을 겹치고 점잔을 빼고 있는 수도원장을 볼 때마다 약이 올랐습니다.


어느 날, 왕이 수도원장을 잡고 물어 보았습니다.


"여보시오, 수도원장. 당신은 그렇게 뚱뚱한데, 어째서 과인은 이다지도 마른 것일까요? 대체 살이 찌는 비결이 뭐요?”


그러자 수도원장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대답했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언제나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머리가 아프신 겁니다. 그러니 살이 찌려야 찔 시간이 있겠어요? 소승은 언제나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간답니다. 때때로 웃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니 소승한테는 뭐 그리 심각한 문제가 없어요. 그저 때때로 찾아오는 치통(齒痛. 순우리말로는 ‘이앓이’ - 옮긴이) 따위가 심각하다면 심각하달까. 그러니 살이 찌지요. 그러니까 전하께서도 앞으로는 느긋한 마음을 품으시고, 골칫거리를 멀리하소서. 그러다 보면 두통도 사라지고, 마음이 개운해져서 소승처럼 살이 찌실 겁니다.”


수도원장은 스스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자신의 배를 툭툭 쳤습니다. 너무 살이 쪄서 허리를 굽혀 절을 할 수도 없는 수도원장은 머리에 손을 대어 인사를 한 다음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은 수도원장이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나자,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습니다.


“흥, 배불뚝이 주제에 과인을 바보 취급하다니. 그래, 자기는 골치를 썩일 일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과인이 골칫거리를 하나 안겨 주지. 이번에는 절대로 웃지 못할걸.”


그 날 오후, 왕은 사람을 보내 수도원장을 궁궐로 오게 했습니다. 뚱뚱한 수도원장이 씩씩거리며 도착하자, 왕이 말했습니다.


“수도원장, 과인이 그대에게 문제를 세 가지 내겠소. 그대는 사흘 안에 그 문제의 해답을 과인에게 알려 주어야 하오.


첫째, 과인이 가진 옷 가운데 가장 좋은 예복을 입고. 최고급 비단으로 만든 망토를 걸치고, 순금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을 때, 과인의 몸에 걸친 것들은 모두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나가는가?


둘째, 이 세상의 한가운데는 어디인가?


그리고 셋째는 과인이 모레 아침 10시에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오.


그대는 그토록 살이 찔 만큼 현명하니, 이 문제들을 잘 풀 수 있을 것이오. 정확히 모레 아침 10시에 과인에게 와서 문제들의 답을 말하도록 하시오. 만일 그대가 이 세 가지 문제를 정확하게 맞히면, 그대의 몸무게만큼 황금을 상으로 수겠소. 그러나 만약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틀릴 경우에는 왕을 우롱한 죄로 저 탑 위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 버리겠소.”


수도원장은 하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도원장은 있는 지혜를 다 짜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끙끙거리며 생각해 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수도원장의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갠 날처럼 맑던 머릿속이 안개 낀 날처럼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수도원장이 거리를 헤매다 라 르얄 수도원으로 돌아온 것은 날이 어둑어둑해진 다음이었습니다.


감옥에 갈 생각을 하니, 너무 기가 막혀 배가 고픈지 어떤지도 몰랐습니다. 하루 종일 생각에 시달려 몹시 피곤했지만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왕이 낸 문제의 해답은 알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밝자,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장에게 뭔가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언제나 맑게 갠 하늘같던 수도원장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들이 수도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원장님,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요?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저희들이 도와 드릴까요?”


“제발 나를 내버려 두시오.”


수도원장은 성가시다는 듯이 문을 쾅 닫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수도원장은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두통만 점점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전하의 호화로운 옷이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세상의 한가운데가 어딘지 내가 알게 뭐람? 게다가 전하께서 아침 열 시에 뭘 생각하시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야? 이거야 원, 어쩌면 좋지?’


내내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고민을 했지만, 수도원장의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길이 없다고 생각한 수도원장은, 수도원에서 제법 영리하다고 알려진 수도사들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수도사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 때면 늘 그렇듯이, 그들은 라틴어로 오랫동안 토론했습니다(중세 서유럽 세계의 공용어는 로마제국의 말인 라틴어였다. 이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한자로 쓴 한문으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한 것과 같다. 또 바라트 연방 공화국은 각 주州마다 쓰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정해서 쓰고 있다 - 옮긴이).


한참 만에 한 수도사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토론을 해도 결론을 못 내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로서는 이 문제의 실마리조차 찾아내기 어려우니, 수도원의 모든 식구들을 불러 모아 문제를 풀도록 합시다. 정원사나 요리사, 청소부까지 모두 불러 지혜를 모으는 게 좋겠습니다.”


수도원장은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수도원의 모든 식구들에게 왕이 자신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 세 개를 냈다는 것, 해답을 내일 아침 열 시까지 왕에게 말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 등을 말해 주었습니다.


수도원장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슬픔이 연기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늘만 떨어져도 소리가 날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갑자기 한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한두 마디 해도 될까요?”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도원의 정원사였습니다.


“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좋소.”


문제의 답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수도원장이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제 부탁 한 가지만 들어 주시면 제가 원장님을 위해서 세 가지 문제를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문제를 풀어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원장이 한 가지 부탁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원장님의 하얀 법의를 제게 빌려 주셨으면 합니다.”


“내 법의(法衣. 원래는 불교 승려가 입는 옷인 ‘가사’나 ‘장삼’을 일컫는 말이나, 천주교의 사제가 입는 옷도 이렇게 부른다 - 옮긴이)가 왜 필요하지? 그 법의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는데.”


수도원장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제가 그 법의를 입어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모여 있던 수도사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몸집도 작고 비쩍 마른 정원사가 천막처럼 커다란 수도원장의 옷을 입은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는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다급해진 수도원장은 옷을 빌려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정원사는 소박하고 낡은 자기 옷 위에 수가 놓인 수도원장의 법의를 걸치고 궁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길고 무거운 법의는 앞뒤가 질질 끌리고, 옷에 달린 모자는 이마를 덮어 코가 겨우 보일 정도였습니다. 수도원장의 옷은 정원사의 몸이 서너 개는 더 들어갈 만큼 커 보였습니다.


정원사는 (수도원장의 - 옮긴이) 옷이 질질 끌리는 바람에, 왕과 약속한 열 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여기에 도착했다고 왕에게 일러라.”


정원사가 파수꾼에게 말하자, 파수꾼들이 누구인가를 물었습니다. 정원사는 자기가 라 르얄 수도원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하, 라 르얄 수도원에서 왔다는 사람이 전하를 뵙겠다고 합니다.”


파수꾼의 말을 듣고 수도원장이 왔다고 생각한 왕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잠시 기다리라고 일렀습니다.


왕은 파수꾼이 물러난 뒤 즉시 귀족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수도원장에게 값어치를 물은 바로 그 복장이었습니다.


왕은 은과 진주로 꾸며진 멋진 옷을 입고, 그 위에 고급 비단으로 만든 망토를 걸쳤습니다. 망토는 어깨에서부터 부드럽게 늘어져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살짝 덮고 있었습니다. 왕관은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빛을 받을 때마다 번쩍번쩍 빛났습니다.


준비를 마친 왕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수도원장을 들여보내라고 일렀습니다.


수도원장의 옷을 입은 정원사가 커다란 법의를 질질 끌며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가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귀족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에, 누가 저 사람을 수도원장이라고 하겠어? 사람이 며칠 사이에 저렇게 마를 수 있단 말인가. 옷이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니는 꼴이야.”


웅성거리는 소리에 짜증이 난 왕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왕 역시 마음속으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흥, 사흘 전만 해도 돼지처럼 살이 뒤룩뒤룩 쪄 있더니, 정말 꼴좋다. 과인이 낸 세 가지 문제를 맞히려고 고민하다가 그 많던 살이 다 녹아 없어진 게야. 이제야 과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 테지.’


왕은 마음속으로 만족해하면서도, 엄숙한 얼굴로 말을 꺼냈습니다.


“자, 수도원장. 준비가 되었으면 시작해 봅시다. 과인의 첫 번째 질문은 과인이 지금 입고 있는 것들이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었소.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시오.”


“정확히 말씀드려서 은화 스물아홉 닢 입니다.”


모자에 덮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정원사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왕과 귀족들은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귀족들이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겨우 은화 스물아홉 닢 이라니! 도대체 당신이 정신이 있는 사람이오? 전하께서 입으신 옷만 해도 재봉사 스무 명이 40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것이오. 그런데 은화 스물아홉 닢 이라고? 말이나 되는 소리요?”


가장 나이 많은 신하가 노여움을 삭이며 법의를 입은 정원사에게 소리쳤습니다.


“그건 소승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원사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하의 옷 값은 은화 스물아홉 닢 보다 동전 하나도 더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를 ”구세주“라고 부르고, 마요르카 섬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한 갈래인 천주교를 믿는다 - 옮긴이)께서는 은화 서른 닢에 팔리셨습니다(그리스도교의 경전인『신약성서』에는 예수가 자신의 제자인 유다에게 배신당했고, 유다는 그 대가로 유대교 사제들에게 은화 서른 닢을 받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 옮긴이). 그러므로 전하의 옷이 아무리 비싼 것들로 장식되어 있더라도 은화 서른 닢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승의 생각에는 은화 한 닢 이라 할지라도 부당한 값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왕과 귀족들은 정원사의 설명에 할 말을 잃고 잠잠해졌습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귀족들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장의 말씀이 옳아요. 그 대답이야말로 명답 중의 명답입니다.”


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하자, 왕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두 개의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왕은 여유를 보이며 두 번째 물음에 대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럼, 이 세상의 한가운데는 어디요?”


그러자 장원사는 왕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전하, 대단히 외람된 말입니다만, 소승이 그 자리에 한 번 앉아 보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왕은 느닷없는 부탁을 받자, 얼떨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왕좌에 올라앉은 정원사의 조그만 몸은 푹신한 왕좌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잠시 뒤, 정원사는 자기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대답했습니다.


“소승이 지금 앉아 있는 이 곳이 바로 세계의 중심입니다. 만약 소승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어디 한 번, 소승의 잘못을 증명해 보소서.”


궁전 안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꼼짝없이 증명을 하게 생긴 귀족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침묵을 지켰습니다. 뭔가 미심쩍기는 했지만, 두 번째 대답 역시 옳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원사는 왕좌에서 내려와 왕이 다음 질문을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두 번째 문제 역시 쉽게 풀어내자, 왕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왕은 혼잣말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수도원장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세 번째 문제는 풀 수 없을 거야. 대체 사람이 어떻게 남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겠어?’


왕은 마음속으로는 애가 탔지만, 태연하게 세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자, 이제까지는 현명하게 잘 맞혀 주었소. 하지만 세 번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이니, 잘 대답하도록 하시오. 바로 이 순간에 과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겠소?”


“전하께서는 소승이 라 르얄 수도원의 원장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정원사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오. 그대는 라 르얄 수도원의 원장이오.”


정원사는 왕의 대답에 웃으며 자기가 입고 있던 수도원장의 흰 법의를 벗었습니다. 그러자 허름한 옷을 입은 빼빼 마른 정원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아닙니다, 전하. 소인은 수도원의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일 뿐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정원사의 말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러자 앞줄에 있던 귀족 한 사람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전하뿐 아니라 우리 신하들까지도 이 사람을 라 르얄 수도원의 원장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셔야 하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세 번째 질문도 정확히 맞힌 것입니다.”


왕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경(卿)의 말이 맞소. 저 영리한 정원사는 우리 모두를 멋지게 속여 넘긴 게야. 그렇지만 과인은 몹시 기분이 좋은걸. 그가 다행히 철사처럼 빼빼 말랐기에망정이지, 정말 수도원장이었더라면 왕궁의 재산은 바닥이 나고 말았을 거야.”


이렇게 말한 왕은 정원사의 몸무게를 달아 그 만큼의 금을 정원사에게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시종들이 금이 든 두 개의 자루를 수도원으로 옮기자, 수도원장은 몹시 기뻐했습니다.


정원사와 수도원장은 그 금으로 포도나무를 샀습니다. 그들은 포도나무를 수도원 뒤쪽, 햇볕이 잘 드는 언덕에 심어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매년 가을, 넓은 포도밭에는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그들은 잘 익은 포도를 골라 정성껏 포도주를 담갔습니다. 그러고는 큰 통 가득히 포도주를 담아 왕에게 보냈습니다. 왕이 포도주를 마시고 골치 아픈 나라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라는 뜻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이번 가을에도 달콤한 포도주를 왕에게 보낼 겁니다.


- 마요르카 섬의 옛날이야기


* 마요르카 : 지중해 서부에 있는 섬. 더 정확히는 이베리아 반도(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있는 땅)의 동쪽에 있다. 에스파냐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남유럽에 속한다.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6 - 세 가지 질문』(오혜윤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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