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카란칼 이야기

개마두리 2015. 9. 11. 23:03

 

어느 바닷가 마을에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일요일마다 성당에 나가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정성껏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아기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너무나 답답해서 마법사에게 찾아가 물어 보았습니다. 마법사는 1년만 기다리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마법사의 말대로 아내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키가 한 뼘도 안 되는 아주 자그마한 아기였습니다.

 

부부는 아기에게 ‘카란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을 기울여 키웠습니다.

 

그런데 카란칼은 먹을 것만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먹보였습니다. 카란칼 때문에 도무지 집 안에 먹을 것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카란칼 때문에 집안이 망할 거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카란칼은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 끼에 쌀 여든 되로 지은 밥에다가, 스무 근이나 나가는 고기와 생선을 먹어치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란칼은 힘이 무척 셌습니다.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그 마을에서 카란칼보다 힘센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은 날이 갈수록 가난해졌습니다. 끝내는 양식이 다 떨어지고, 돈 한 푼 남지 않았지요.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큰일이에요. 이러다가 우리 식구 모두 굶어 죽고 말겠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동안 고민한 끝에, 카란칼을 집에서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카란칼을 불러 말했습니다.

 

“카란칼, 너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집을 나가 혼자 살도록 해라.”

 

카란칼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요.”

 

“네가 집에 남아 있으면 우리 모두 굶어 죽게 된단다. 제발 집을 나가거라.”

 

“그렇다면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어요. 떠나기 전에 칼 한 자루만 만들어 주세요.”

 

아버지는 꼬박 이틀이 걸려 어른 키만한 칼을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카란칼은 그 칼을 등에 지고 쓸쓸히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나온 카란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카란칼은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습니다. 한참 동안 걷다 보니, 숲이 나왔습니다.

 

카란칼은 그 숲에서 ‘부그톤파라산’을 만났습니다. 부그톤파라산은 ‘힘이 아주 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카란칼이 부그톤파라산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글쎄다. 어디로 갈지 생각하고 있어.”

 

“그럼 나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

 

“좋아.”

 

“그럼 떠나기 전에 누가 더 힘이 센지 씨름을 해 보자. 지는 사람이 이 칼을 메고 가는 거야.”

 

부그톤파라산은 카란칼의 말을 듣고, 자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두 사람은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서로 밀고 당기다가, 부그톤파라산이 뒤로 넘어졌습니다. 약속대로 부그톤파라산은 칼을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카란칼과 부그톤파라산은 얼마쯤 걷다가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츠코드보라’였는데, 사탕수수를 으깰 때 쓰는 무거운 철통을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는 힘센 사람이었습니다.

 

카란칼은 츠코드보라에게 씨름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츠코드보라는 씩 웃더니, 옆에 있는 큰 나무를 통째로 잡아 뽑았습니다. 그러고는 나무를 손으로 비틀더니,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던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카란칼이 말했습니다.

 

“제법 힘이 세군. 하지만 나를 이길 수는 없을걸.”

 

카란칼과 츠코드보라는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땅이 쩌렁쩌렁 울리고, 바위가 우르르 굴러 떨어졌습니다.

 

마침내 츠코드보라가 나가떨어졌습니다.

 

카란칼이 넘어진 츠코드보라에게 말했습니다.

 

“츠코드보라, 네가 졌으니 이 칼을 메고 가라.”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한나절을 걸어가자 큰 산이 나타났습니다.

 

세 사람은 그 산 꼭대기에서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마카브할분도그’인데, 산을 뒤집어엎을 만큼 힘이 셌습니다.

 

카란칼은 마카브할분도그에게도 씨름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카브할분도그는 손으로 언덕을 밀어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하하하! 나는 언덕을 밀어젖힐 만큼 힘이 세다.”

 

“하지만 나는 언덕이 아니야.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을 수가 있지.”

 

카란칼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카란칼은 단숨에 마카브할분도그를 넘겨 버렸습니다.

 

네 사람은 함께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숲길을 걷기만 할 뿐이었지요. 모두들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깊은 숲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카란칼은 부그톤파라산을 불러 말했습니다.

 

“저 나무에 올라가서 마을이 있는지 잘 살펴봐.”

 

부그톤파라산은 높다란 나무에 올라가 멀리까지 살펴보고 내려왔습니다.

 

“숲 저 편에 집이 한 채 보여.”

 

“잘 됐다. 그 집에 가서 먹을 것을 얻자.”

 

네 사람은 그 집으로 가서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네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네 사람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습니다.

 

“이제 배도 부르니, 사냥을 하러 가자. 앞으로는 우리 힘으로 살아야지.”


카란칼은 부그톤파라산을 남겨 두고, 나머지 두 사람과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혼자 집에 남은 부그톤파라산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이 쿵쿵 울리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집 안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그놈을 잡아먹어야지.”

 

거인이 부그톤파라산을 잡으러 다가왔습니다. 부그톤파라산은 용감히 맞서 싸우려 했지만, 손쓸 겨를도 없이 거인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거인은 부그톤파라산을 기둥에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밥을 먹은 뒤에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세 사람이 돌아와 부그톤파라산을 풀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카란칼은 츠코드보라에게 부엌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과 사냥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츠코드보라도 거인에게 져 기둥에 묶였습니다. 마카브할분도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거인과 맞서 봐야겠어.”

 

카란칼은 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박박 깎았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집에 남아 거인이 들어올 때를 기다렸지요.

 

드디어 거인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거인은 카란칼의 머리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그런 머리는 처음 보는군. 아주 멋있어. 내 머리도 그렇게 깎아 줄 수 있겠나?”

 

“머리를 이렇게 깎으려면 아주 힘이 들 텐데 …….”

 

카란칼은 능청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힘들어도 상관없어. 어서 깎아 줘.”

 

거인은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그럼, 이 기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해.”

 

거인은 카란칼이 시키는 대로 기둥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카란칼은 거인을 밧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아니, 왜 묶는 거야?”

 

“머리를 깎으려면 몸을 묶어야 하거든.”

 

거인은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카란칼은 거인을 묶은 뒤, 거인의 몸에 기름을 칠했습니다.

 

“아니, 내 몸에 왜 기름칠을 하는 거야?”

 

“머리를 잘 깎으려면 기름칠을 해야 해.”

 

거인은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카란칼은 성냥불을 켰습니다.

 

“머리를 깎는데 성냥불은 왜 켜는 거야?”

 

카란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거인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기름을 바른 거인의 몸에 불이 붙었습니다.

 

거인이 죽고 난 뒤, 네 사람은 그 집에 눌러 살았습니다.

 

어느 날, 네 사람은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바다 건너 나라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없애 주는 사람을 왕의 사위로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사람은 곧 그 나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널 배가 없었습니다. 네 사람은 헤엄을 쳐서 가기로 했습니다. 네 사람은 3주일 동안이나 헤엄을 친 끝에 겨우 자그마한 섬에 닿았습니다.

 

카란칼은 그 섬을 칼로 꾹 찔렀습니다. 그러자 섬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바람처럼 빠르게 이웃나라에 가 닿았습니다. 그 섬은 커다란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네 사람은 곧장 그 나라의 왕에게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그 바위를 없애겠습니다.”

 

“좋다. 그럼 과인을 따라오너라.”

 

왕은 네 사람을 바위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바위 근처에는 바위를 없앨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벌써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맨 먼저 부그톤파라산이 나섰습니다. 부그톤파라산은 얼굴이 벌개지도록 힘을 쓰며 바위를 들어올리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츠코드보라가 나섰습니다. 츠코드보라도 바위를 몇 발자국밖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마카브할분도그는 제법 멀리까지 바위를 옮겼지만, 아주 치워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란칼이 나섰습니다. 카란칼은 밧줄로 바위를 묶었습니다. 그리고 밧줄을 힘껏 잡아당기자, 바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 왔습니다. 카란칼은 재빨리 밧줄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 커다란 바위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빙빙 돌았습니다. 바위가 빠르게 돌자, 카란칼은 밧줄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바위는 하늘을 씽씽 날아 까마득하게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왕이 기뻐하며 카란칼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힘이야. 약속대로 자네를 과인의 사위로 삼겠네.”

 

하지만 카란칼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전하, 소인은 아직 결혼할 나이가 아닙니다. 소인 대신 소인의 동무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공주님과 결혼하게 해 주소서.”

 

왕은 카란칼의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그톤파라산이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머지 세 사람도 궁궐에서 부그톤파라산과 함께 살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나라의 왕에게서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바닷가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물고기가 풍기는 지독한 냄새가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바다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힘센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물고기를 바다 속에 넣어 주신다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해 주겠습니다.”

 

편지를 읽은 세 사람은 부그톤파라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 나라로 떠났습니다.

 

왕은 세 사람을 데리고 물고기가 있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바닷가에는 집채만한 물고기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츠코드보라가 물고기를 힘껏 밀었습니다. 마카브할분도그도 물고기를 밀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를 바닷속으로 넣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카란칼은 그다지 힘도 들이지 않고, 물고기를 바닷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카란칼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공주와 결혼해 주게.”

 

하지만 카란칼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소인 대신 소인의 동무가 결혼하게 해 주소서.”

 

왕은 카란칼의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츠코드보라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카란칼을 비롯한 네 장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졌습니다. 축하 편지가 매일 날아들었고, 결혼을 하자고 조르는 처녀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카란칼과 마카브할분도그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이 여행 채비를 하는데, 어떤 나라의 왕이 또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소. 이 바위를 치워준다면 과인의 막내 공주와 결혼하게 해 주겠소.”

 

두 사람은 곧 그 나라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카란칼이 밧줄을 써서 멀리 날려 보낸 것과 똑같은 바위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카브할분도그는 바위를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 바위를 치울 수 없겠는걸. 카란칼, 자네가 해 보게.”

 

카란칼은 밧줄을 써서 바위를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카란칼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과인의 공주와 결혼해 주게.”

 

하지만 카란칼은 이번에도 마카브할분도그를 자기 대신 부마로 추천했습니다.

 

카란칼은 이 때부터 장가 든 세 동무의 집을 돌아다니며 지냈습니다.

 

얼마 뒤, 부그톤파라산이 사는 나라의 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그톤파라산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쯤 지나, 츠코드보라와 마카브할분도그도 왕이 되었습니다.

 

카란칼은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 동무를 찾아다니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세 동무는 카란칼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카란칼이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몹시 기뻐했습니다. 카란칼이 돈을 아주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이제는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았답니다.

 

- 필리핀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27 - 카란칼 이야기』(조호상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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