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일곱 가지 변신술

개마두리 2015. 9. 13. 21:44

                            
‘우느백’은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우느백의 재산이라고는 검은 염소 몇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가진 게 없다 보니, 두 식구가 끼니라도 때우려면 먼 친척뻘인 부잣집에서 죽어라 일을 해야 했습니다.


나무를 해다 주고, 난로의 재를 치우고, 그 집 하인들과 함께 소떼를 돌보고 ……. 말로만 친척일 뿐, 우느백은 그 집 하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도 얻는 것은, 부자 친척이 먹다 남긴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고달픈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자 친척이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된 것입니다.


“여봐라, 어서 천막을 접어서 마차에 실어라. 천막 안에 있는 물건들도 빠짐없이 싣고, 자, 자, 조심해야지.”


부자가 하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부자는 짐을 마차에 다 싣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하인들과 소떼를 데리고 멀리 떠나 버렸습니다.


“어머니, 이젠 어떡하지요?”


우느백은 멀어져 가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주위에는 먼지바람만 일 뿐, 우느백과 어머니에게 남겨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났습니다. 우느백과 어머니는 검은 염소에서 짜낸 젖으로 간신히 버텨 나갔습니다. 우느백이 견디다 못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러다간 두 사람 다 굶어 죽겠어요. 제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 일자리를 찾아볼게요. 자리가 잡히면 어머니를 모시러 오겠어요.”


어머니는 단 하나뿐인 아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말릴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눈물로 아들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었습니다. 우느백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때로는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갔습니다. 때로는 아무도 밟지 않은 낯선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우느백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하염없이 걷기를 사흘째, 우느백은 마침내 넓은 계곡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엔 살아 있는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나 되는 말들이 이리저리 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말 떼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말 떼의 주인은 어디 있을까? 주인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면 목동으로 일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을 텐데.’


우느백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우느백은 말 떼의 주인을 찾아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 천막이 있었습니다. 우느백은 무작정 천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천막 안에는 시커먼 수염을 기른 남자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수염이 꼭 염소수염 같았습니다.


‘옳지, 이 사람이 말 떼의 주인으로구나.’


우느백은 이렇게 생각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염소수염 사내는 거만하게 앉아 우느백을 쳐다보더니, 찾아온 까닭을 물었습니다. 우느백은 사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목동으로 써 주셨으면 합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듣던 사내가 말했습니다.


“하긴, 지금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하지만 난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을 구하고 있어. 넌 힘도 없어 보이고, 일을 잘 할 것 같지도 않은데 …….”


그러자 우느백은 다급하게 매달렸습니다.


“제발 일을 시켜 주세요.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밤에 내 말떼를 지키되, 한 마리라도 늑대에게 물려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돼. 만약 오늘 밤에 (말떼를 - 옮긴이)무사히 지켜내면 너에게 말을 한 마리 주겠다. 하지만 한 마리라도 없어지는 날에는 널 죽여 버릴 거야. 어때? 이래도 할 수 있겠나?”


“예, 예. 할 수 있고말고요.”


우느백은 허겁지겁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우선 저에게 먹을 것을 좀 주세요. 사흘 동안 거의 먹은 게 없거든요.”


그러자 염소수염 사내가 안쪽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여보, 이 청년에게 음식 좀 갖다 주시오. 남은 게 있으면 모조리 갖다 줘요. 말떼를 지키려면 우선 건강하고 힘이 좋아야 하니까.”


사내는 아내에게 이렇게 이르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조금 있으니 사내의 아내가 맛있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우느백은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습니다. 생김새가 몹시 징그러웠기 때문입니다. 머리칼은 온통 붉은색인데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입술이 축 늘어져 아주 보기 흉했습니다.


그래도 음식은 맛있어 보였습니다. 우느백은 허리띠에 꽂아둔 칼을 꺼내, 고기를 먹기 좋게 잘랐습니다.


우느백이 고기 한 점을 막 입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머리에 검은 점이 두 개 있어서 마치 눈이 내  개처럼 보이는 아주 이상한 개였습니다.


개는 배가 고픈 듯이 헐떡거리다가, 곧장 우느백의 접시로 달려들었습니다. 개가 고기 한 조각을 덥석 물려는 순간, 우느백은 개를 발로 힘껏 차 버렸습니다. 개는 사납게 으르렁거렸습니다. 하지만 우느백을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슬며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사내의 아내는 우느백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느백이 쳐다보자 후닥닥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염소수염 사내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돌아왔습니다.


“이봐, 이봐.”


염소수염 사내는 아주 거칠게 자기 아내를 불렀습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담! 신께서 자비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난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야. 그 거친 회색 암망아지가 나를 또 물어뜯었어. 그놈의 이빨을 남김없이 다 뽑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사내가 화난 얼굴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놈의 이빨이 다시 났나 봐.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뜯지.”


그러자 사내의 아내도 화난 목소리로 되받았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그 암망아지를 죽여버리자고 했잖아요. 내일 당장 죽여서 저녁거리로 만들어요, 네?”


부부가 싸우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우느백이 일하러 갈 시간이 된 것입니다. 염소수염 사내는 막대기 아홉 개를 가져왔습니다.


“이보게, 이 막대기들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고르게. 말떼를 지키려면 이런 막대기가 필요하거든. 이건 어떤가?”

 

사내가 (막대기들 가운데 - 옮긴이) 하나를 골라들며 말했습니다.


“이건 포플러나무로 만든 걸세. 아주 잘 말라서 돌처럼 단단하지. 이걸로 한번 치면 늑대란 놈은 뻗어버릴걸. 아니면 이걸 가지든지. 이건 어린 버드나무로 만들었는데, 아직 덜 말라서 좀 부드럽지. 하지만 이걸로는 늑대의 등을 부러뜨리지는 못할 거야. 자, 어느 것을 가지겠나?”


우느백은 막대기의 성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포플러나무는 단단하긴 하지만 늑대를 세게 내려쳤다가 부러질지도 몰라. 하지만 버드나무 가지는 휘기는 해도 잘 부러지지는 않아. 그러니 버드나무 쪽이 낫겠어.’


우느백은 버드나무 막대기를 골랐습니다.


그 다음에 사내는 우느백을 마구간으로 데려갔습니다.


“자, 자네가 타고 다닐 말을 한 마리 고르게나.”


우느백은 우리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 마침 긴 갈기를 가진 밤색 수말이 마치 우느백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왔습니다. 우느백이 손을 내밀자, 말은 얌전히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우느백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로 하겠어요.”


우느백이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니, 그 말을 고른 건 별로 잘 한 것 같지 않은데.”


사내는 애써 당황함을 감추며 말했습니다.


“그 말은 여섯 달 동안이나 우리 밖을 돌아다녔어. 비쩍 마른 걸 좀 보게나. 성질도 사납고, 자네를 태울 만한 기운도 없을 거야. 왜 좀더 나은 말을 고르지 않나?”


하지만 우느백은 그 말이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아뇨, 제게는 이 말이 꼭 맞는 것 같아요.”


어느 새 넓은 들판에 어둠이 깔렸습니다. 우느백은 버드나무 막대기를 들고 밤색 수말 위에 탔습니다. 그리고 말 떼를 돌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염소수염 사내의 흰 천막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밤색 수말이 갑자기 쉰 듯한 사람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우느백, 너는 지금 네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아니? 염소수염 사내는 원래 ‘투렌베이’라는 마술사야. 몸집도 작고 못생겼지만, 무서워하는 게 없고 아주 잔인한 성격이란다. 또 변신술에 능하기 때문에 100가지 동물로 변할 수 있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동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해.”


우느백은 깜짝 놀랐습니다. 말이 사람처럼 말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는데 주인이 잔인한 마술사라니 ……. 우느백은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밤색 수말은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원래는 투렌베이의 먼 친척이었어. 그런데 나를 시기한 투렌베이가 나를 말로 변하게 만든 거야. 벌써 7년 전 일이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얼마나 원한에 차서 지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밤색 수말은 그간의 일을 생각하는지 잠깐 말을 멈추었습니다.


“우느백, 너도 위험해. 너처럼 일을 하겠다고 찾아온 젊은이가 여럿 있었어. 투렌베이는 그 때마다 돈을 많이 주겠다고 약속했지. 하지만 그 젊은이들이 말을 돌보러 나가는 첫날 밤이면, 언제나 엄청나게 큰 회색 늑대가 나타나 말떼를 습격하곤 했어. 아무도 그 늑대를 당해낼 수가 없었지. 그래서 젊은이들은 모두 그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 난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는 알려 줄 수가 없었어. 그런데 너는 나를 골랐기 때문에 너에게 말해 주는 거야.”


“그,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다른 젊은이들처럼 죽임을 당하는 건 아닐까?”


우느백은 간신히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사실 나도 그 회색 늑대를 당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힘닿는 데까지 도와 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꼭 붙어 있어야 돼.”


밤색 수말이 강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달을 가리고 있던 회색 구름이 걷히고 사방이 희부옇게 밝아졌습니다. 우느백은 숲을 지나 말떼 속으로 다가오는 회색 늑대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늑대다!”


우느백이 탄 말이 짧게 부르짓더니, 콧김을 내뿜으며 늑대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회색 늑대는 어느 틈에 말떼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느백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는 벌써 망아지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숲 속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회색 늑대도 그 틈에 섞여 숲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느백이 탄 말은 날렵하게 뛰어 늑대를 따라잡았습니다.


우느백은 늑대 곁을 스치면서 막대기를 번개처럼 휘둘렀습니다. 막대기는 정확하게 회색 늑대의 눈과 눈 사이에 맞았습니다. 막대기에 얻어맞은 늑대는 곧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습니다.


그러나 회색 늑대는 세 번 재주를 넘더니, 다시 달아나려 했습니다. 그 때 우느백이 (늑대를 - 옮긴이) 있는 힘껏 막대기로 후려쳤습니다. 이번에는 늑대의 머리통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마침내 회색 늑대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느백은 곧장 말에서 뛰어내려 회색 늑대에게 달려갔습니다. 회색 늑대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회색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우느백은 허리띠에 꽂아 두었던 칼을 빼들고 회색 늑대의 가슴을 겨우었습니다. 회색 늑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심장을 찔러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우느백이 늑대에게 소리쳤습니다.


“살고 싶다면 빨리 정체를 드러내라!”


그러자 눈부신 빛이 확 비치더니, 주위의 어둠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회색 늑대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바로 염소수염 사나이 투렌베이였습니다.


“제발, 살려 줘.”


투렌베이가 더듬거리며 사정했습니다.


“만약 나를 살려 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게.”


“좋아. 그럼 먼저 이 말한테 건 마법을 풀어 줘.”


우느백은 곁에 서 있는 밤색 수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알았어. 그렇지만 그 일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주문을 외워야 돼. 그 밖에 원하는 걸 말해 봐.”


“그렇다면 나에게 변신술을 가르쳐 줘. 그러면 널 살려 주겠어.”


“좋아, 가르쳐 주지. 하지만 지금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일곱 가지뿐이야. 나머지는 집에 가서 가르쳐 줄게.”


투렌베이는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를 감싸쥐면서 말했습니다.


“흠, 그 일곱 가지라는 게 어떤 거지?”


우느백이 되물었습니다.


“힘세고 빠른 말이 되는 법, 키가 하늘에 닿는 포플러나무가 되는 법, 호수에서 헤엄치는 은빛 잉어가 되는 법, 하늘을 나는 잿빛 종달새가 되는 법, 소녀의 수놓은 모자가 되는 법, 붉은 수수낟알이 되는 법, 시원하고 깨끗한 샘이 되는 변신술이야.”


“잠깐만.”


우느백이 회색 늑대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넌 맹수의 이름은 한 가지도 말하지 않았어.”


“그건 너무 어려워서 지금 당장은 가르쳐 줄 수가 없어. 그걸 배우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거야.”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우선 일곱 가지만 배우기로 하지. 어려운 것은 다음에 배우기로 하고 말이야.”


우느백은 투렌베이에게서 변신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투렌베이는 우선 은빛 잉어로 변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침이 될 때까지 우느백은 일곱 가지 변신술을 모두 배웠습니다.


날이 밝아 오자, 우느백과 투렌베이는 밤색 수말을 데리고 천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우느백이 말 고삐를 잡고 앞장을 섰습니다.


한참 길을 가는데, 갑자기 밤색 수말이 히힝거렸습니다. 우느백은 자기도 모르게 고삐를 잡아끌었습니다. 그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투렌베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느백은 재빨리 말 위에 올라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 때, 저만큼 앞에서 거대한 용이 불을 뿜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투렌베이가 용으로 변한 것입니다. 용은 거칠게 불을 내뿜으며 우느백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우느백은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의 배를 힘껏 걷어찼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용은 그 커다란 몸통으로 우느백을 점점 죄어 왔습니다. 우느백은 열심히 변신술을 떠올렸습니다.


‘아아, 이럴 땐 뭐로 변해야 좋지?’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우느백은 키가 하늘까지 닿는 포플러나무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용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줄기를 움켜쥐고 나무를 쓰러뜨리려 했습니다. 줄기를 잡은 용의 발톱이 나무둥치 속으로 깊게 파고들자, 나무는 점점 앞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쿵 하고 쓰러지며 호수에 처박혔습니다.


그 순간 우느백은 재빨리 은빛 잉어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투렌베이는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잉어를 잡으려고 호수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우느백은 창을 피해 이리저리 헤엄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창끝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잉어로 변한 우느백이 물풀 뒤에 몸을 숨기자, 창은 곧바로 잉어의 등을 찌르려 했습니다.


순간, 우느백은 재빨리 물 위로 뛰어오르며 종달새로 변했습니다. 우느백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창은 매로 변해 종달새를 뒤쫓아왔습니다. 우느백은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어느 틈에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바로 뒤에 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던 우느백은 어떤 천막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깨끗하고 아담한 천막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우느백은 천막 가까이로 날아갔습니다. 마침 한 천막의 문이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소녀는 어쩐지 슬퍼 보였습니다. 소녀는 천막 안으로 날아 들어온 종달새를 보더니,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우느백은 소녀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느백은 붉은 수를 놓은 모자로 변해서 소녀의 머리 위에 사뿐히 앉았습니다.


“어, 이게 웬 모자지?”


소녀는 난데없이 나타난 모자를 보고 어리둥절해했습니다. 모자는 고운 비단에 붉은 실로 수가 놓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모자가 몹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때, 천막 안으로 한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젊고 멋있게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손에 ‘돔라’(만돌린과 비슷하게 생긴, 자루가 길고 줄이 세 개 달린 악기. 줄을 퉁겨서 소리를 낸다 - 옮긴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천막에서 가장 윗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그러더니 돔라의 줄을 퉁기며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또 소녀의 고귀한 핏줄을 찬양하면서, 소녀의 고조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이 남긴 업적을 기렸습니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소녀를 천사에 빗대어 찬양하면서 노래를 끝맺었습니다. 소녀는 노래를 들으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노래예요. 저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 그토록 훌륭한 노래를 불러 주시다니, 무엇으로 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청년은 소녀가 이렇게 말하자, 소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가씨가 쓰신 그 아름다운 모자를 주신다면, 저는 아가씨의 모습을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그 모자를 볼 때마다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겠지요.”


소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모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 청년에게 주기에는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소녀는 아쉬워하며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청년에게 - 옮긴이) 모자를 내밀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소녀의 손에 들려 있던 모자가 별안간 붉은 수수낟알로 변했습니다. 붉은 수수낟알은 주르르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노래하던 청년도 사라지고, 어디선가 커다란 암탉이 나타나 수수를 쪼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암탉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진 수수낟알을 거의 다 쪼아 먹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알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수수낟알은 간신히 암탉의 부리를 피해 천막 밖으로 굴러갔습니다. 수수낟알은 구르고 굴러, 뜰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사냥개의 발가락 사이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암탉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사냥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물려 죽기 십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암탉은 용기를 내어 사냥개의 발가락 사이에 든 수수낟알을 쪼았습니다. 그 바람에 사냥개가 잠에서 깼습니다.


한참 달게 자던 사냥개는 몹시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습니다. 사냥개는 단번에 암탉에게 덤벼들어 목을 물어뜯었습니다. 암탉이 피를 흘리자,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개는 그 냄새에 더욱 화가 나서 닭을 더 세게 물어뜯었습니다. 닭은 결국 죽어 버렸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 당황해하는 소녀에게 우느백이 다가왔습니다. 우느백은 마술사 투렌베이가 죽자마자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느백은 소녀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아까부터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나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우느백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겐 ‘바자백’이라는 오빠가 있었어요. 어느 날 오빠는 더 큰 세상에 나가 행운을 찾겠다며 집을 떠났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요. 오빠는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니, 언제나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 때,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사방이 시끌벅적해지면서 개 짖는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우느백과 소녀는 천막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밖에 나가보니 - 옮긴이) 웬 젊은이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소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내 사랑하는 동생아, 잘 있었어?”


순간, 소녀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소녀는 한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그 젊은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느백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녀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같아.’


이렇게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젊은이가 타고 온 말의 안장이 우느백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맞아! 저건 내가 타고 다니던 그 밤색 수말의 안장이야. 그렇다면 저 사람은 …….’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오 …… 오빠! 정말 오빠예요? 어디에 있었어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어요?”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녀가 흐느끼듯이 오빠를 불렀습니다.


“난 투렌베이의 마술에 걸려 있었어.”


바자백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소녀에게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우느백 덕분이야.”


우느백과 바자백은 반가워서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문도 없이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가 있었죠? 투렌베이는 사흘 밤낮 동안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했는데.”


우느백이 궁금해서 바자백에게 물었습니다.


“그거야 간단하지. 투렌베이가 죽어 버렸기 때문이야. 마술사가 죽었으니까 내게 걸려 있던 주문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거지.”


마을에서는 7년 만에 돌아온 바자백을 반갑게 맞이하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물론 우느백은 아주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았지요.


우느백은 소녀의 집에 머물면서, 모든 사람에게 투렌베이에게서 배운 일곱 가지 변신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느백과 소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바자백은 기꺼이 우느백과 누이동생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뒤, 우느백의 어머니를 모시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리따운 신부까지 데리고 돌아온 늠름한 우느백을 보고, 기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느백은 그 뒤에도 자기가 배운 변신술로 수많은 사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는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깨끗한 샘으로 변해 목을 축여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어갈 때에는, 힘센 말로 변해 그들의 짐을 대신 날라 주었습니다. 또 무더운 여름 한낮,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위해서는 포플러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길 잃은 사람에겐 종달새로 변해 길을 알려 주었고요.


우느백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 우랄 지방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21 - 일곱 가지 변신술』(조은수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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