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옛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명대사/문장들 10

개마두리 2022. 12. 6. 10:06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달빛을 받아 뼈처럼 하얗게 빛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들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위이이잉. 산 사이로 부는 바람은 절벽 아래를 지나며 흐느끼는 듯한 신음소리를 흘렸다. ‘쌀쌀하다.’는 말로는 모자란 감이 많은 겨울 밤의 겨울 산이다. 짙은 구름들은 달빛을 가렸다 드러냈다 하며 떠갔다.”

- 10쪽

“말씀해 보시오, 산(山)들이여!”

“말해 보시오, 별들이여! 바람이여! 이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창세기 이후로 그곳에 계속 계셨으니, 말 없는 그대들은 그 눈으로 많은 것을 보았겠지요. 그러니 이제 말씀해 보시오!”

- 13쪽

“반란자이지 않습니까.”

“도둑을 교수대에 매다는 법은 있어도, (그 도둑이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도둑질할 때 쓰던 망치나 지렛대 따위를 매다는 법은 없잖소.”

- 15쪽

“저장된 건초(乾草. 베어서 말린[乾] 풀[草] - 옮긴이)들 … (중략) … 이 풍부한 모양인지, 레인저(ranger. 경비대원 – 옮긴이) 대원들은 우리들을 위해 침대에 새 건초를 깔아주었다. 길시언은 (자신이 – 옮긴이) 왕자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할 필요는 없다고 점잖게 말했지만, 레인저들의 대장은 겨울 여행에 나선 모든 여행객들은 응당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길시언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 16쪽

“사람이 (동화나 민담 같은 – 옮긴이) 옛이야기처럼 살 수는 없소.”

“글쎄요. ‘그리고 모두 행복했답니다 …….’,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결말(끝맺음 – 옮긴이)이고, (그렇게 될 – 옮긴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만.”

- 18쪽

“난 이미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자요. 협박에 몸을 사렸고, 더러운 욕망에 내 자식들을 내어준 자요.”

“그럼, 시정(是正.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 옮긴이)해요!”

- 20쪽

“당신은 그에게 아무런 분노도 표현하지 않더군요.”

“당신은 그를 용서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예 …… 굳이 말하라면, 뭐 그런 거겠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를 말입니다.”

“뭐, 그의 변한(바뀐 – 옮긴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변한 모습이오?”

“우리는 인간이고, 그래서 실수를 하고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우린 우리들이 달라질 것을 알지 않습니까? 우리 수명이야 짧다면 짧지만, 사실 굉장히 오래 사는 거라고 보는데요, … (중략) … 그 긴 시간 동안 (좋은 – 옮긴이) 변화가 일어날 시간은 충분하고,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는 법입니다.”

- 25 ~ 26쪽

“인간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인간을 대할(마주할 – 옮긴이) 때, 상대가 ‘변화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27쪽

“돌아가시오, 핸드레이크.”

“그래야 할 이유(까닭 – 옮긴이)를 세 가지만 대보시오.”

“말장난하고 싶은 기분도, 그럴 상황도 아니오. 당신더러 이곳에 와 달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돌아가시오.”

“와 달라고 한 사람도 없지만, 오지 말라고 한 사람도 없어. 아니, 말을 정정(訂正. 글이나 글자 따위의 틀린 곳을 고쳐 바로잡음 – 옮긴이)해야 되겠군. (만약 – 옮긴이) ‘오지 말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없애버리겠어.”

- 30쪽

“죽기 직전엔 일생이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헛소리. ‘콰당!’(하고 – 옮긴이) 부딪히는 감촉도 못 느끼겠지.”

- 35쪽

“(검사인 – 옮긴이) 당신은 검(劍)을 무서워합니까!” 

“무서워하네.”

“뭐라구?”

“(마법사인 – 옮긴이) 자넨 검을 쥐어본 적이 없으니 모를 테지. 검사는 검을 무서워하는 법부터 익혀야 하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지. 검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자는 검사가 아니야. (다만 천박한 – 옮긴이) 칼잡이일 뿐이지.”

- 44쪽

“우정은 친구(동무/벗 – 옮긴이)의 잘못을 시정해 주는 것이고, 그것(잘못 – 옮긴이)을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배신이야.”

- 48쪽

“전사는 자신이 쥔 검 한 자루로 자신을 (스스로 – 옮긴이) 이끈다고 믿지. 그래서 검을 자신의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지. (이 – 옮긴이) 기가 막히도록 유아독존(唯我獨尊. ‘오직[唯] 나[我]만이 홀로[獨] 높다[尊]’ →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이 잘났다고 뽐내는 태도 : 옮긴이)적인 환상.” 

- 52쪽

“검이라는 것은 광부에 의해 캐내어져, 수레꾼에 의해 운반된(날라진 – 옮긴이) 광석이 대장장이에 의해 검으로 만들어지고, 상인에 의해 팔려서 전사에게 쥐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 옮긴이) 세상에 (완전히 – 옮긴이) ‘자기 손으로’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 옮긴이) 어처구니없는 환상이다. 가증스러울 정도의 자기애(自己愛.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생기는, 자기에 대한 사랑. 나르시즘 – 옮긴이), 타인(다른 사람 – 옮긴이)을 이해할 줄 모르고 타인의 존재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의 망상이다.”

- 52쪽

“어떤 종족도 당신에게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자신을 버려가면서 그들을 위해 애쓰려는 거지요? 자기가 있지 않고서는 타인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왜 자기로서 살지 않는 거예요?”

“당신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타인 속에 있을 때, 자신도 있다.’는 것을.”

- 61쪽

“나무를 사랑하는 정원사가 가지를 쳐내듯, 우정과 사랑은 상대의 잘못된 것을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에요. (그것은 – 옮긴이) 아름다운 파괴지요.”

- 61쪽

“이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반역자답게 왕가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왕자님, 진실을 말하는 것이 ‘능멸(凌蔑. 업신여기고[蔑] 깔보다[凌] - 옮긴이)하는 것’이라면, 난 지금 (왕자님 당신이 속한 – 옮긴이) 바이서스 왕가를 능멸하고 있소.”

- 75 ~ 76쪽 

“왕자님, 당신의 이야기를 듣자니, 저 역시(또한 – 옮긴이) 어떤 자들이 떠오르는군요.”

“자신만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다.’고 생각하고 타인이라는 것의 (참된 – 옮긴이) 의미(뜻 – 옮긴이)를 모르는 작자들이 있소. 그런 자들은 타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를, (그 ‘타인’이 – 옮긴이)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도무지 모르오. (그들은 – 옮긴이) 자신을 희생할 줄 모르기 때문에, 타인의 희생에 대해서는 아예 이해하질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마음대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작자들이오. 혹 머리로는 (타인의 희생을 – 옮긴이) 알지 몰라도, 가슴으로는 모르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이 가족(식구 – 옮긴이)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을 알며 ……, 가족들을 사랑하는 …….”

- 79쪽

“이봐, 들어보라구. 넌(양초는 – 옮긴이) 자신을 태워서 빛을 만들어. 그렇다면, 인간도 자신을 태워서 뭔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타는 것이 두려우면, 영원히 빛을 만들지 못한다.’는 초장이(들의 – 옮긴이) 농담도 몰라?”

- 84쪽

“우리(인간 – 옮긴이)는 모든 것을 우리로 바꿔 버리는 존재요. 어떻게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종족이지. 어떤 미궁도, 어떤 산악, 어떤 바다도 인간의 발 앞에 점령되지 않을 수 없소. 당신(드워프인 ‘엑셀핸드’ - 옮긴이)은 말 위에서도 불안해하지만, 우리는 하늘도 정복했다오.”

- 89쪽

“300년 전의 인물과 만나는 것도 가능한 일이군!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혼란스러운걸. 현재가 제멋대로 과거와 연결되어버리니, 시간 관념이 엉망이 되잖아.”

- 90쪽

“칼(Karl)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벼락이 칠 때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망령처럼 보였지만, 난로의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또 정반대로 뭔가 세상을 위한 따스한 계획이라도 세우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 93쪽

“가까운 산들의 녹색은 촉촉하게 젖어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산들은 청회색으로 아련히 사라져갔다. 산자락 자락마다 감고 도는 아침 안개의 희뿌연 흐름 속에 대지는 잠겨들어 보이지 않았다. 안개 위로 산봉우리와 산등성이만이 흘러 떠가는 듯했다.”

- 95쪽

“나는 (다른 사람들의 – 옮긴이) 말을 전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없는 무정물(無情物. 감정[情]이 없는[無] 물건[物] → 나무나 돌처럼 감각성이 없는 물건 : 옮긴이)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이다.”

- 97쪽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대륙 전체가 어차피 지옥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 104쪽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은회색 구름들이 갈라진 틈 사이로 희미하게 황금빛 햇살이 내리비쳐 먼 산들을 물들여 놓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 대기(大氣. 지구를 둘러싼 공기층/공기 – 옮긴이)의 곳곳이 빗살로 구분지어져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대지는 …… 마치 황금색 얼룩무늬가 있는 검은 천자락처럼 보였다.”

- 108쪽 

“늑대가 양에게 동정심을 가지면 어떻게 되지?”

“예?”

“대답해 봐. (만약 – 옮긴이) 늑대가 양에게 동정심을 가지면, 그렇다면 늑대는 어떻게 될까?”

“굶어 …… 죽겠지요.”

“거미가 나비의 아름다운 날개에 매혹을 느끼면 어떻게 되지?”

“죽게 될 겁니다.”

“그래. 땅속을 다니며 뿌리를 캐어 먹는 땅강아지가 자신은 보지도 못한 꽃잎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한 번도 꽃을 본 적이 없을걸. 하지만 누군가가 땅강아지에게 ‘지금 그대가 파먹고 있는 뿌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의 뿌리’라고 알려주면, 그래서 땅강아지가 꽃의 모양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동경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죽을 겁니다.”

“꽃은 그걸 알지도 못하겠지?”

“그럴 테지요.”

“늑대의 경우를, 거미의 경우를, 땅강아지의 경우를, 넌 뭐라고 표현하겠니?”

“멍청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칭송하지 않을 거니?”

“아뇨. 그건 어리석은 경우입니다. 늑대는 양을 잡아먹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거미는 나비를 잡아먹도록 되어 있지요. 또한 땅강아지는 꽃에 신경쓰지 않고 뿌리만 캐어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왜 그렇지? 인간은 어떻게 다르다는 거니?”

“늑대는 양을 동정하지 못하게 태어났습니다. 거미도, 땅강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원래 자신의 ‘제물’에 감정을 이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 옮긴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인간 – 옮긴이)는 원래 그럴 수 있도록(다른 존재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 옮긴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 135 ~ 137쪽

“우리(인간 – 옮긴이)의 마음은 넓지 않습니다. … (중략) …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남들에게 – 옮긴이) 나눠줌으로써 (거주하는 곳과 존재하는 곳이 – 옮긴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 137쪽 

“너희들(인간들 – 옮긴이)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길, 꽃잎을 사그러들게 하고, 구름마저 그을리는 미친 불꽃일 뿐이야! 세상의 모든 것 속에 너희들을 투영(投影. 물체의 그림자를 비춤 → 어떤 일을 다른 일에 반영하여 나타냄 : 옮긴이)함으로써, 세상 모든 것을 (너희의 것으로 – 옮긴이) 소유하려는 것이야!”

- 138쪽

“너희들(인간들 – 옮긴이)은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이야!”

- 138쪽

“너무 오래 돌았다. 균형 감각은 모조리 사라지고, 지독한 어지러움과 희미해지는 세상만이 남았다. 하지만 난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300년간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비록 그 오해가 – 옮긴이) 내 것도 아니지만, 나완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이 지독한 오해의 고리를 두고 볼 수는 없다. 이것(오해의 고리 – 옮긴이)은 벗겨야 한다.”

- 141~142쪽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려 들지 말라는 말밖엔 해줄 말이 없구나.”

- 150쪽

“난 핸드레이크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정확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하며 사는 거니까요.”

“우리(인간들 – 옮긴이)는 서로간에 약속된 조화를 누리지는 못하니까, 뭐 상대의 의중을 짐작해 보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애쓸 수밖에 없지요. (예를 들면 – 옮긴이) ‘내가 욕설을 하면, 상대는 기분 나쁠 것이다.’라는(하는 – 옮긴이) 수준 낮은 것부터 시작해서 …… 더 복잡한 개념과 사상을 나누려고 애쓸 수밖에 없지요.”

- 155쪽

“우리들(인간들 – 옮긴이)이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파괴입니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파괴 행위지요. 그 점에선 당신(요정왕 ‘다레니안’ - 옮긴이)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불길일지도 몰라요.”

“파괴라구?”

“그래요. 상대를 원래의 모습으로 있게 두지를 못하지요. 어떻게든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하려 애씁니다. 상대가 스스로의(자신의 – 옮긴이) 기쁨을 누리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음으로써 즐겁고, 나와 함께함으로써 기쁘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알고 있는 그만의 즐거움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이 점에선 사랑과 증오는 거의 같아요. 어쨌든, 상대를 변화시키려고(바꾸려고 – 옮긴이) 애쓰는 것이니까요.”

- 159쪽

“인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뭐?”

“짝사랑이지요.”

“그럼,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뭔지 아십니까?”

“난, 난 …….”

"상사병이올시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짝사랑과 상사병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지요. 참 글러먹은 문제입니다. 짝사랑을 하면 그냥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면 될 문제인데 말입니다.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꼭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된단 말입니다. 상대도 날 봐주었으면, 날 생각해 주었으면, 날 사랑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마음이 – 옮긴이) 고장이 나버리지요. 고약하다면 고약한 것이고, 동정하려고 들면 정말 동정받을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 159 ~ 160쪽

“네가 말하고 싶은, 진정한, 진정한 사랑은 뭐지?”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다는 거지? 상대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단 말이야!”

“그 두 가지(진정한 사랑과 무관심 – 옮긴이)는 구별하기 어렵겠지요. 나로선 확신은 없습니다. 신(神)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겠지요.”

- 161 ~ 162쪽

“난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좌절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허탈감, 그리고 배신감. (그런데도 – 옮긴이) 어떻게 나는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우정은 금이 갔고, 일생의 노력은 무의미해졌다(의미가 없어졌다 – 옮긴이). 그런데도 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까닭은 – 옮긴이), 계속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멈춰서서 목놓아 울고 싶지만, 주저앉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 164 ~ 165쪽

“죽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살의와 또 다른 감정,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이 그대로 터져 버리는 듯했다.”

- 165쪽

“내 메마른 목소리는 통로의 공기를 울리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말의 조각, 던져진 파편 같았다.”

- 165쪽

“(요정들의 여왕인 – 옮긴이) 다레니안은 손바닥이 타오르는 것 같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양초를 들고 있는 것 같은걸. 불이 꺼진 채 300년 동안 싸늘하게 식었던 아름다운 양초(다레니안의 마음 – 옮긴이)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촛농이 내 손바닥을 태우며, 내 가슴도 (뜨겁게 – 옮긴이) 태우는 것 같았다.”

- 172쪽

“넌 특별한 것 같아.”

“글쎄요. 모든 이가 다 특별하겠지요.”

“그래? 후후. 인간아. (너는 – 옮긴이) 인간으로 서고, 인간으로 말하는구나? 너희들(인간들 – 옮긴이)은 모두 하나이며, 모두가 특별하다는 말이겠지?”

- 175쪽

“<대충 알 듯하다.>는 것은, <상당 부분 모르겠다.>는 말이다.”

- 178쪽

“지평선이 아름다운 이유(까닭 – 옮긴이)는 그 너머에 모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선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너머에 미지(미지의 세계 – 옮긴이)가 있기 때문이고. 어쨌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아름다울 까닭이 없다.”

- 179쪽 

“이런, 정말 안전한 겁니까?”

“살아 있는 자들 중(가운데 – 옮긴이) 누가 죽음 앞에 안전할 수 있지?”

- 202쪽 

“그(참된 왕 – 옮긴이)는 거대한 위험이 있을 땐 언제든지 그 위험과 자기 친구(동무/벗 – 옮긴이)들 사이에 서려는 사람이야. 그는 ‘등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등을 보여준다?”

“등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하지? 그래. 앞에 서야 돼. 앞에 서서 이끌고, 앞에서 오는 위험과 불안을 (자신의 뒤에 선 사람들을 위해 – 옮긴이) 묵묵히 막아줘야 되지. 그게 등을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등에는 표정도 없어. 따라서 (얼굴과는 달리 – 옮긴이) 사람들을 속일 수도 없지. … (중략) … 거기에 덧붙여 더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한다는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야.”

- 209쪽

“모두들 외로운 거죠.”

그래. (밤은/사람의 삶은 – 옮긴이) 너무 길고, (인간은 – 옮긴이) 너무 외롭다. 그러면서도 삶을 바쁘게 만드는 백만 가지 쓸모 없는 일들 때문에, (우리는 – 옮긴이) 마주보고 웃을 시간도 없다.

- 215쪽

“네게 해를 끼치진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약속이 깨지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유감스럽다.>는 것은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난다.>는 말이죠. (만약 – 옮긴이)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유감스럽다.’는 말 대신, ‘놀랍다.’거나 ‘어처구니 없다.’는 말을 써야 되겠죠?”

- 219쪽

“달빛 참 좋군. (그 달빛이 모래알들을 비추기 때문에 – 옮긴이) 모래가 아니라, 은(銀) 가루를 밟는 것 같은데.”

- 231쪽

“바드(Bard. 방랑시인/떠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시를 읊는 시인 – 옮긴이)들이 먹고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뭐야?”

“세상엔 단순한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거든. 그래서 (길고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 옮긴이) 노래가 필요한 거야.”

- 237쪽

“인간은, 인간은 개인으로서 세계를 상대할 줄 안다.”

- 244쪽

“들개와 독수리가 싸우는 것은 대개 썩은 고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여기선 썩은 고기보다 더 복잡한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256쪽 

“대마법사(소설 속의 핸드레이크 – 옮긴이)는 죽었습니다.”

“예? 아니, 무슨 말씀인지?”

“칸 아디움의 안티고어 시장은 루트에리노 대왕과 핸드레이크의 이야기는 우리 나라(주인공 일행의 나라인 ‘바이서스’ 왕국 – 옮긴이)의 가장 소중한 뿌리이자, 긍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대왕은 한 인간이 아니라, 이 나라 자체였고, 저 대마법사는 우리의 정신 그 자체였지요. 나 또한 지금껏 그렇게 알아왔고, 그렇게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칼(Karl)?”

“대마법사는 죽었습니다. 한 인간인 핸드레이크가 있을 뿐입니다. 여덟 별을 추구했지만, 그 또한 스스로의(자신의 – 옮긴이) 부조리를 안고 걸었던 인간일 뿐이지요. 대왕과 마찬가지로. 

이제 더 이상 내게 ‘우리의 정신 그 자체이며, 우리의 전설이던 대마법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들었던 그에 대한 모든 이야기, 전설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된 그의 만가(挽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나 노랫말 – 옮긴이)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대마법사의 만가만을 되풀이해서 불러왔을 뿐이고, 단 한순간도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야 그를 이해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난 눈을 감고 300년 전에 살았던 한 인간, 핸드레이크를 봅니다.”

- 274쪽 

“우리는 절벽 옆을 따라 난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위로 까마득한 절벽, 반대쪽은 아래로 깎아지른 벼랑, 그리고 멀리 산봉우리들과 바위, 숲, 그리고 구름들. 어쨌든 높은 산지에서 볼 만한 것들은 다종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으니, 벼랑 쪽으로 다가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떨어질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는 생각은 웃기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거세게 부는 바람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그대로 벼랑 쪽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한 손을 바위벽에 붙인 채 손바닥이 쓸리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걸어야 했다. 쓸리는 것은, 어쨌든 떨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 277 ~ 278쪽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 지쳐서 저절로 아래로 늘어지는 손을 힘들게 들어올려 바위를 짚는 것은 이제 의지나 힘보다는 습관성(性)에 가깝다. 지금까지 걸어왔고, 멈추지는 않았으니 그저 걸어가는 것.”

- 278쪽

“공기가 희박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맑아서 그런 것인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들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산봉우리들은 터무니없이 멀어진다.

지상의 아기자기한 사물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기엔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 곳이다. 한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그것은 사실 점이 아니라 집채만한 산인 것이다. 

산, 산, 산. 지평선은 사라져버렸다. 산봉우리들을 감싸고 도는 구름들은 마치 산들이 너울을 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290쪽

“입은 열 때 유용한(쓸모 있는 – 옮긴이) 경우가 많지만, 때론 (그것을 – 옮긴이) 닫고 있을 때 얻는 것이 많을 수도 있어.”

- 304쪽

“이제껏 우리는 허겁지겁 달려오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우선 시간이 우리들을 채찍질했고, 그 다음 여러 가지 방해들이 우리들을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차분히 생각해 볼 여유 같은 것은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달려왔습니다.”

- 312쪽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우정은 특별히 ‘고맙다.’는 말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거라고들 하지만, 전 여러분들이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와주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는 아닙니다. 그 험난한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준 것이며, 각 개인의 자질과 능력은 모두가 특별한 것이며 원래 존중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

“난 여러분들이 모두 끝까지 서로를 믿고 주저함이나 두려움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어떤 역경보다도 동료의 좌절이나 실패가 더 우리를 아프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강인한 여러분들은 한번도 좌절하거나 무릎 꿇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 313쪽

“몇백년 후엔 우리들은 신화(神話. 본향풀이 – 옮긴이)의 등장 인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말을 조심해야 되겠군. 후대의 사람들이 날 이 일행의 어릿광대로 평가하는 것은 반갑지 않은걸.”

- 314쪽

 

“신화? 글쎄. 난 오늘 신화의 정의 하나를 내릴 수 있겠는걸? 아버지의 일상은 아들의 신화가 되는 거야.”

- 314쪽

“질문이 있는데요?”

“자네가 질문을 가지고 있다면, 난 아마도 대답을 가지고 있겠지.”

- 316쪽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은 어쩌면 좋죠?”

“도망치면 되잖아?”

“도망쳐요?”

“응. 그런데 도망에는 두 가지가 있어. 앞으로 도망치는 것과, 뒤로 도망치는 것. 그러니까 레니는 앞으로 도망치면 돼.”

“뒤로 도망치는 것은 (뭔지 – 옮긴이) 알겠는데, 앞으로 도망치는 것은 뭐예요?”

“이건 군대 같은 데서 간혹 들을 수 있는 농담이야. 신병들이 처음으로 전투에 배치될 때 말이지, 녀석들은 전쟁에 질려버려 돌격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무기(병기[兵器]/잠기 – 옮긴이)고 뭐고 집어던지고 달아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 그때는 명령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래서 고참병들은 신병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지. 도망치려면 앞으로 도망치라고.”

“왜지요?”

“그래야 도망을 쳐도 아군 안에 있게 되니까. 보라구. 아군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혼자 뒤로 도망치면 어떻게 되지? 낙오되잖아. 그럼 시선을 끌게 되고, 화살 맞기도 쉬워. 하지만 앞으로 도망치면, 계속해서 아군 안에 있게 돼. 그래야 자기 맞을 화살을 다른 아군이 맞아줄 수도 있고 말이지. 알겠지?”

“그 말이 통해요?”

“믿긴 어렵겠지만, 그거 낙오병이나 탈주병 줄이는 데는 썩 효과가 있는 말이야. 우리(군인들 – 옮긴이)는 몰려다니는 성질이 있는 종족이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도망치고 싶댔자 나 혼자서는 도망도 못 치니까, 차라리 친구들 옆에 남아 있는 것이 낫다.’ 는 말이죠?”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고.”

- 324 ~ 326쪽

“재 속에서 태어나 영원으로 회귀하는 불사조의 비행처럼,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 327쪽

→ 이상 모두 『 드래곤 라자 』 제 10권( ‘이영도’ 지음, ‘(주)황금가지’ 펴냄, 서기 1998년 )에서 퍼옴

☞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그렇다. 나는 『 드래곤 라자 』 에 중독되었다. 다섯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라는 말은 정확하다.

- 단기 4355년 음력 11월 13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