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상식] 감정 노동

개마두리 2024. 11. 9. 21:26

카페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흔히 듣는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어법에도 맞지 않은 사물 높임말이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하는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말도 종종 듣는다. 계산하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절도이므로, ‘도와드리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뿐인가? 콜 센터에서는 전화 상담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인사하며 응대한다. 대형 의류 상점에서는 직원들이 손님과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불러 주세요.”하고 반복적으로 외쳐 댄다. 대형 마트(큰 할인 매장 옮긴이)에 가면 직원이 입구에 서서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하면서 90° 배꼽 인사를 바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종업원이 주문받을 때 앉아 있는 손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른바 퍼피 도그 서비스(Puppy Dog Service)’.

 

직원들이 이러는 것은 모두 기업이 강요하는 매뉴얼 때문이다. 기업 중에서는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졸도를 외치는 곳도 있다. 고객이 놀라 쓰러질 정도로 서비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말투는 물론(勿論. 말할[] 것도 없고[] - 옮긴이), 시선 위치, 표정 처리까지 매뉴얼화해 직원을 철저히 훈련한다. 손님에게 친절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상냥함과 친절의 기준은 도가 지나치다. 이 역시 (서기 옮긴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상품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접객 노동자의 극존대가 사회에 보편화하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1983년 처음 언급한 개념인 감정 노동(emotional labor)’일터에서 자신의 감정 상태까지 조정해 서비스의 한 부분으로 제공해야 하는 노동을 뜻한다.

 

한 항공사는 언제나 웃어야 한다.’는 주문에 반발하는 승무원들을 이렇게 교육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첨을 맞추기 때문에 화난 것입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을 버리세요!”

 

감정 노동의 어려움을 잘 보여 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비행기에 탄 손님이 승무원에게 왜 미소를 짓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승무원이 먼저 그쪽이 미소를 지으면 저도 웃겠어요.”라고 하자 손님은 웃어 보였다. 이때 미소를 띤 승무원의 말, “좋아요, 이제 그 상태로 15시간 동안 계세요.”

 

사람이 자기 감정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감정 노동자는 이처럼 자기 감정을 은폐하고 늘 밝은 모습만 보이기를 강요받는다. 손님의 모욕적인 언행에도, 심지어 협박에도 웃어야만 한다. 내면적 감정(felt emotions)과 외면적 감정(displayed emotions)의 반복 충돌과 감정적 부조화는 스트레스, 자존감 훼손, 자기 비하, 열등감, 우울증, 무기력, 의욕 저하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정서적 소모와 심리적 탈진으로 이어진다. 심하면 자기방어를 위해 감정 마비 상태에 이르고 폭식, 흡연, 폭음 등으로 몸이 무너질 수도 있다.

 

감정 노동의 해결책으로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 심리 치료사를 배치한다든지, 감정 노동자에게 손님이 친절과 미소로 화답하는 방법이 언론에 흔히 회자(膾炙. 널리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 옮긴이)한다. 하지만 이는 임시변통일 뿐이다. 혹심한(매우 심한) 감정 노동의 조건을 만드는 곳은 다름 아닌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손님이 왕인 점을 들어 감정 노동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겠지만, 그 역시 단순한 명분뿐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빈곤의 경제 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모욕적인 행위들(끊임없는 감시, 관리자의 엄한 질책)이 저임금을 유지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별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하면, 자기가 받고 있는(받는 – 옮긴이) 임금이 실제로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생각해 볼 말이다.

 

- 박민영,피로 사회 사는 것이 왜 이리 피곤할까? , 고교 독서 평설 310(서기 20171월호) 에서

 

- 단기 4357년 음력 10월 9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