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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독립 영웅 후손, 남은 건 무거운 삶의 무게

▶ 죽는 순간까지 당당했던 윤봉길 의사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상해[上海] - 옮긴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전승 행사장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윤봉길 의사(나는 ‘투사’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 옮긴이)가 던진 물통 폭탄으로 현장에 모여 있던 일본군 수뇌부가 괴멸한 것입니다. 자결용으로 추측되는 도시락 폭탄을 터뜨리기 전, 윤봉길 의사는 일본 헌병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습니다(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러니까 서기 1990년대에는 윤 투사가 “도시락 폭탄”을 근대 왜군 수뇌부에게 던졌다고 배웠다.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잘못된 교육을 받았음을 알겠다 – 옮긴이). [덧붙이자면, 윤 투사가 폭탄을 던진 뒤, 그 자..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 히타치조센 배상금 6천만 원 첫 수령

- 해방 앞두고 일본 끌려간 이 모 씨…'강제 노역’ - 광복 뒤에야 귀국…2014년, 日 기업 상대 소송 -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낸 돈 받은 첫 사례 [앵커]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전범 기업이 우리 법원에 낸 공탁금 6천만 원을 강제동원 피해자(‘노예노동의 피해자’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 옮긴이) 측이 배상금 명목으로 수령했습니다. 자발적으로 납부한 일본 기업 자금이 피해자 측에 지급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비슷한 공탁 사례가 없어 다른 피해자들이 배상받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김철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해방을 한 해 남겨둔 (서기 - 옮긴이) 1944년, 이 모 씨는 일본 오사카 히타치 조선소로 끌려갔습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일제 패망 ..

갈마(역사) 202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