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입법’이다. 즉 국회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다. 한 시민 단체가 국회의원의 직무 능력을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을 이행한 정도, 국회 출석률, 국민과의 소통 노력, 공직자로서의 청렴도 등 다양한 평가 지표가 있다. 그중 가장 비중 있는 평가 지표가 바로 ‘국회의원 임기 중 법률안 발의 건수’다. 법률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원의 주요 임무이자 능력인 까닭이다.
‘법’이 늘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미처 법이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하고, 예상치 못한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법률은 필요에 따라 개정되어야 하며, 아예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 제/개정은 국민의 삶에 법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 이를 해소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민을 구제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법률안을 많이 발의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의 불합리한 허점이나 모순점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방증이다. 이는 한마디로 그들이 민생(民生)을 꼼꼼히 챙기고 살폈다는 뜻이다.
민생을 자식처럼 챙겼다고 알려진 세종대왕(조선 제 4대 왕, 재위 기간 1418 ~ 1450)의 일화를 살펴보자. 세종 30년, 상소문을 읽던 그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상소문의 내용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다.
“노비들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가면, 그 노비의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는 돌볼 사람이 없어 끼니를 잇지 못해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해 길거리에 백성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여름의 무더위가 유난히 심해 감옥에 있는 죄인들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들거나 죽어 나가고 있으니, 백성의 통곡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전하.”
세종은 이 상소문을 계기로 형법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게 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노비를 걱정한 세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명(命)을 내린다.
“각 도 관찰사에게 고한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심하니 유배형 이하 죄수는 모두 사면하고, 또 석방되지 않은 죄수는 옥에서 더위 때문에 죽거나 병나지 않게 잘 돌봐 주도록 하라. 또한 홀아비나 과부인 죄인의 어린 자식들은 관가에서 거두어 보호하며, 유배중인 죄인 가운데 늙은 부모가 있는 자에게는 1년에 한 번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휴가를 주고, 그 휴가 일수를 복역 일수에 합하도록 하라.”
이후 어명은 곧 법이 되었다. 노비를 사적인 재물로 인식하던 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시대 초기에 이토록 파격적인 조치를 내린 것은 역시 성군 세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미 죄인과 그 가족(식구 – 옮긴이)의 어려움을 헤아려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시행했다는 사실은 세종이 민생을 얼마나 살뜰히 챙겼는지를 잘 보여 준다.
-『 고교독서평설 』지 2017년 4월호(제 313호) 기사인「 공을 양손으로 던져야 하는 까닭은? 」(작은 제목 < 새로운 법률의 필요성과 법률 제/개정의 의미>)에서
- 음력 4월 20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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