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아주 오래 된 포도주

개마두리 2011. 12. 9. 21:15

 

 

옛날 자신의 포도주 창고와 그곳에 저장된 포도주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창고에는 아주 오래 묵은 특별한 포도주가 한 병 있었다. 주인은 그 포도주를 자신만이 아는 ‘특별한 때’에 쓰려고 아껴 두었다.

 

어느날 주(州)의 총독이 그에게 찾아왔다. 주인은 속으로 ‘저 포도주를 한낱 총독일 뿐인 자를 위해 딸 순 없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날에는 그 교구(敎區)의 주교가 그를 찾아왔다. 주인은 혼자서 속으로 ‘아니, 그 병은 안 따. 주교는 그 술의 값어치를 모를 거야. 그 코로는 향내도 맡지 못할 걸.’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왕자(王子)가 와서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주인은 ‘그 술은 왕자 정도가 먹기에는 너무 좋은 술이야.’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기 조카가 혼례(婚禮)를 치르는 날에도 ‘아냐, 그 병은 이 손님들에게 낼 게 아니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갔다. 그는 늙어죽었다. 그리고 모든 씨앗과 열매가 그러하듯이 땅에 묻혔다.

 

그가 묻히던 날 그의 ‘특별한 포도주(‘’는 옮긴이)’도 다른 포도주 병들과 함께 나왔다. 그리고 이웃 농부들이 그 술을 나누어 마셨다. 아무도 그 포도주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잔에 부어진 것은 모두 그저 포도주였을 뿐이었다.

 

― 칼릴 지브란의 우화집『방랑자(Wanderer)』에 실린 우화

 

▶ 옮긴이의 말 :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나니”, 아무리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라도 그저 깊숙이 숨겨놓고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리? 때를 살피고 기회를 잘 잡아서 중요한 것을 쓸 줄 알아야 한다.

 

* 칼릴 지브란 : 레바논의 아랍인 소설가이자 시인. 대표작은『예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