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주민 차별 '디스트릭트 9'의 경고

개마두리 2012. 4. 22. 16:31

- 등록 : 2012.04.20

 

[토요판] [TV +] 김성윤의 덕후감

 

3년 전 개봉했던 <디스트릭트 9>은 명백히도 제노포비아에 관한 영화였다. 번역하면 외국인 혐오증 내지는 외국인 공포증쯤 되겠다. 외국인이 나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외국인 때문에 범죄의 위협을 느낀다는 식의 생각이 퍼져 있으면 그 사회는 제노포비아에 시달린다고 말할 수 있다.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들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방인들을 응축한 형상이다.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차별을 받았던 실제 ‘디스트릭트 6’의 흑인들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영화 개봉 1년 전에 짐바브웨 출신 이주민에 대한 집단 테러가 있었던 걸 고려하면 그들 외계인은 최근의 외국인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 초반에 남아공 시민들이 “저들 때문에 사는 게 위험해요”라거나 “그놈들한테 쏟아붓는 세금이 아까워요”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은 남아공 사회가 그만큼 제노포비아에 찌들어 있다는 고발인 셈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저놈들한테만 듣는 바이러스를 개발해서 몰살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혐오 받는 존재가 외계인으로 응축되어 형상화된 건 어쩌면 필연일 수도 있겠다. 왜냐면 그들은 남아공의 흑인 국민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바로 그들 흑인이 공격하는 인근 지역 출신 이주민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영화에서도 얘기하듯 외계인 우주선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떠 있는 게 단지 우연인 것처럼, 그들 외계인은 남아공뿐만 아니라 지구촌 어디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곳, 대한민국에서도 말이다.

 

물론 한국의 제노포비아는 아직 잠재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놓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적의 기준을 민족 혈통으로 엄격하게 생각(영화에서도 디엔에이가 변형되어 외계인으로 변하기 시작한 주인공은 ‘잡종’으로 분류되어 오갈 곳이 없어진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에 가까운 편이라고 한다.

 

물론 이제부터 그들이 치안을 위협하거나 세금을 축내거나 일자리를 뺏기 시작하면 앞으로 사정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실제로 한국의 제노포비아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에는 외국인과의 접촉 빈도가 그만큼 적어서일 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디스트릭트 9에서처럼 처음에 인도주의적으로 환대하던 시민들이 그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인종차별주의로 기울게 되는 건 거의 찰나의 순간에 가깝다.

 

한국인의 의식에서 제노포비아가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근에 속속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각종 안티-다문화 커뮤니티라든가 하는 것들을 보면, 이제는 우리도 슬슬 제노포비아 문제를 고민할 때가 된 듯하다. 심지어 그들은 (전형적인 극우 논리이기는 하지만) 이주민들이 한국에 있으면 차별과 폭력을 받을 뿐이니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식의 교묘한 도덕적 언술을 펼치기도 한다.(이는 미국 흑인들에게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아?’라고 꼬드긴 서기 19세기 말의 미국 백인들과 비슷하다 - 옮긴이)

 

그러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이런 논리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런 논리에 매혹되어 제노포비아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아질 게 분명하다. 지금이야 온라인상에서 글자 몇 줄 적는 수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좀더 조직화되어 사회적 공론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키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아는 일일 것이고.

 

사족: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 크리스토퍼 존슨은 자기 별로 돌아가며 주인공에게 반드시 3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올해가 바로 그해인데, 속편이 궁금하다.

 

-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한겨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