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중국 정부가 시각장애 인권 변호사를 두려워하는 이유

개마두리 2012. 5. 4. 22:27

 

-『미디어오늘』서기 2012년 5월 4일자 기사

 

[하성봉의 중국이야기 25] 법치사회 천명한 원자바오, "법률로 약자를 보호한다"는 천광청의 용기

 

[미디어오늘 : 하성봉(언론인)]천광청 사건으로 본 중국내 인권의 현주소…1980년대 한국의 제5공화국 수준

 

중국은 국가체제를 설명할 때 '중국특색적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중국식 사회주의'다. 중국은 30여년의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적인 면에서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공산당 일당 독주(獨走)의 사회주의 국가다. 이러한 경제적 자본주의와 정치적 사회주의라는 전혀 상반된 이념과 색체가 반반씩 결합된 야누스적인 얼굴이 바로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내 일상생활 속에서 사회주의 국가임을 전혀 체감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자본주의적인 경우도 있다. 같은 기차를 타더라도 푹신한 의자와 딱딱한 의자의 요금이 다르고 침대차도 가격에 차등을 두고 있을 정도로 돈을 따진다.

 

그러나 중국의 체제와 사상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철퇴가 내려진다. 중국에서 반체제와 반정부적인 행위는 중형을 면할 수 없다. 최근 중국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41세. 한국식 한자발음으로는 ‘진광성’. 성誠은 ‘정성’, ‘진실’, ‘참’, ‘참으로’ 라는 뜻이다 - 옮긴이)씨가 신변보호를 위해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한 사건은 중미간 외교문제로 비화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천씨가 2012년 5월 2일 중국정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미 대사관을 나와 치료를 받으러 차오양(朝陽. 조양 - 옮긴이)병원에 입원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된 듯했다. 그러나 천씨가 대사관을 나온뒤 "가족과 함께 중국을 떠나고 싶다"고 밝히며 중국체류 의사를 번복해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천씨의 심경변화는 가족과 만난뒤 부인으로부터 "공안들이 이틀동안 묶어두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겠다고 위협했으며 집안에 감시카메라와 전기담장까지 설치됐다"는 말을 듣고 중국정부의 안전보장 약속에 회의감이 커진 때문으로 보인다. 천씨의 미국행 요구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재협상 여부가 주목되지만 중국당국이 천씨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미국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중국내 인권문제는 새롭게 부각시켰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내 인권의 현주소는 1980년대 한국의 5공화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미국공관이 박해자들의 안전한 도피처…G2국인 중국이 당면한 서글픈 현실

 

천씨가 미국 공관에 뛰어든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12년 4월 26일 미대사관에 진입한 뒤 6일만이었다. 천씨의 미국 대사관 진입은 중국과 미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면서 천씨의 미국 망명에 대해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가 관심사였다. 미국은 천씨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중국 당국과 안전이 보장된다면 중국내에 체류하겠다는 천광청씨의 입장을 조율해 절충안을 선택했다.

 

미국은 천씨의 미국 망명을 강행할 경우 미중관계가 악화될 것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실제 중국 외교부의 류웨이민(劉爲民. 유위민 - 옮긴이) 대변인은 2일 미국을 겨냥해 "내정간섭"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재발방지를 촉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천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집이 있던 산둥성(山東省) 린이(臨沂)시 이난(沂南)현 둥스구(東師古)촌에서 570㎞ 떨어진 베이징내 미국 대사관까지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진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천광청씨는 탈출과정에서 인권운동가 후자(胡街, 39세. 한자로는 호가 - 옮긴이) 쩡진옌(曾金燕. 한자로는 증금연 - 옮긴이) 부부와 허페이룽, 반체제 학자 궈위산과 익명의 인권운동가 등 5명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개월간의 치밀한 계획아래 진행된 이번 비밀작전은 천씨의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한 탈출과정과 인생역정이 소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 발생한 보시라이(薄熙莱. 한자로는 박희래 - 옮긴이) 사건이 중국 상층부에서의 권력투쟁과 만연한 부패구조를 드러낸 것이라면 천광청 사건은 하층 인민들의 인권실태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 서기의 심복 왕리쥔(王立軍. 한자로는 왕입군. 남南 몽골에서 태어난 몽골인 - 옮긴이)이 2월 6일 쓰촨(四川)성 청두(城都)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찾은 데 이어 천광청씨가 또다시 미국공관에 진입한 것은 개인의 신병보호라는 절박한 공통의 이유가 있었다. 또한 외국 언론에서의 보도를 통한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도 저변에 깔려있었다. 이에 따라 천씨와 지원자들은 2012년 5월 3-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전략경제대화를 앞둔 시점을 D데이로 잡았다.

 

또한 오바마 정권이 왕리쥔의 미국 망명 요청을 거절한 데 대해 미국 정치권내에서 비판여론이 일고 있는 분위기도 천씨와 지원자들을 고무시켰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오는 10월 제5세대 지도부로의 교체를 앞둔 시점에서 중국 지도부내 인권의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중국내 미국공관이 박해를 받는 중국인사들의 안전한 도피처가 되고 있다는 것은 G2국인 중국이 당면한 서글픈 현실이다.

 

해마다 열리는 중미전략경제대화는 양국간 경제현안외에 북한,이란 등 국제 외교현안이 논의된다. 또 미국은 매 회의때마다 중국내 인권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번에는 힐러리 미국무장관이 참석차 5월 2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한자녀 정책 반대로 6년간 징역,가택연금…2003년 장애인 지하철 무료승차 승소

 

천광청씨가 주목받는 것은 인권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때문이다. 천씨는 중국정부의 엄격한 산아제한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됐다. 그는 산둥성 린이시가 한자녀 정책에 따라 7천명의 여성에게 강제로 낙태나 불임시술을 받도록 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2006년 8월 4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적용된 혐의는 '공공기물 파괴죄'와 '군중선동 교통질서 교란죄'였다. 그는 2010년 9월 석방된 뒤에도 줄곧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었다. 또 연금도중 탈출용 땅굴을 팠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천씨는 5살 때 열병으로 시력을 잃은 뒤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다. 천씨가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것은 우연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천씨의 인권운동과 관련해 필자가 취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천광청은 2003년 9월 12일 오전 가족과 여행을 간 베이징에서 지하철을 탈 때 장애인증이 있었지만 거절당했다. 천씨는 이에 항의했다. < 장애인보장법 > (殘疾人保障法)에 따르면 "장애인은 무료로 시내 버스, 전차,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 직원은 < 베이징시지하철차표사용규정 > (北京市地鐵車標使用辦法)을 가리키며 "장애인은 장애인증외에 반드시 베이징시가 발행하는 승차증이 있어야 무료탑승이 가능하다"고 버텼다. 그래서 천광청은 지하철표를 산 뒤 승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뒤 11월 1일 베이징 둥즈먼(東直門)에서 지하철을 탈 때 또다시 거절당했다. 천광청은 둥즈먼 역장을 만났으나 역장도 마찬가지로 지하철 규정을 들고 나왔다.

 

천씨는 많은 법률전문가를 만났다. 그 다음 베이징지하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3위안의 차표값을 반환하고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소송에서 천씨는 승소한다. 베이징서역구법원(北京西域區法院)은 2003년 말 판결에서 "천광청은 시각 장애인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장애인증을 보유중으로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으며 '베이징지하철차표사용규정'은 분명히 '장애인보장법'을 위반했다"고 선고했다. 또 법원은 "베이징지하철은 천광청의 합법적인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원고에게 13위안을 돌려주고 교통비 840위안과 숙식비 334위안을 보상할 것"을 명령했다. 이 소송은 중국내 장애인복지권의 침해와 관련한 첫번째 사례로 중국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사건의 승소는 천광청을 인권운동가로 변모시켰다.

 

법률만이 약자들 보호가능하다는 신념…사회문제로 의식 확대해 촌민지지 얻어

 

천씨는 법률만이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아래 사회문제로 의식을 확대하게 된다. 그사이 불굴의 노력으로 변호사 자격증도 땄다.

 

천씨는 2004년에 자신의 고향인 산둥성(山東省) 이난현(沂南縣) 촌민당위원회가 수년동안 재정관련 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간부들을 파면하고 당 지도부를 새로 임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마을촌민들과 함께 제출했다. 천씨는 여러 차례 파출소에 증거를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자 천씨는 공안기관을 상대로 현(縣)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관리들끼리 서로 눈감아주면서 일은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천씨는 현(縣)법원도 재판을 진행하지 않자 상급법원에 이난현의 전인대(전국인민대표), 검찰원과 현(縣)법원이 공민권을 인정해 법에 따라 감독하고 처벌하도록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천광청의 노력은 촌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학대받는 약자의 편을 드는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의 대담함과 집착은 촌민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힘든 길이었다. 장애인의 몸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천광청이 믿는 것은 법률이었다. 법률이 농민들의 눈에 천광청을 영웅으로 비치도록 했다. 법률이 그를 신체가 온전한 다른 사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인권을 보호하도록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중국언론도 이때까지 천씨를 지지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천씨가 산아제한 정책에 대해 반대의 깃발을 들자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천씨 탈출 도운 인권운동가 후자(胡佳)…환경운동가에서 반체제 인사로 낙인

 

천씨의 탈출을 도운 후자(胡佳,39)씨도 마찬가지다. 후씨의 부인 쩡진옌(曾金燕)씨도 같은 인권운동가로 천씨 탈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후씨는 환경운동가와 에이즈환자지원 활동을 하다가 2008년 4월 국가정권전복선동죄(煽動顚覆國家政權罪)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후씨는 복역뒤 2011년 6월26일에 출소했다.

후씨는 2007년 12월 국외 인터넷에 각종 사회문제와 인권상황에 대한 보도와 평론 2건을 게재하면서 중국 당국에 연행됐다.

 

후씨가 당시 쓴 글은 "10월 1일 국경절과 제17차 전인대를 앞두고 경찰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공민권을 침해한다"라는 내용과 "중국은 대만통일정책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필요없다"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당국은 판결문에서 두 편의 글에 대해 "악의적인 유언비어 날조와 비방, 선동 및 중국국가와 사회주의제도의 전복을 기도했다"고 혐의를 밝혔다.

 

후씨는 수감전인 2006년 1월에는 천안문민주화 시위에 동조해 숙청된 자오쯔양(趙紫陽. 한자로는 조자양 - 옮긴이) 서거 1주년을 맞아 연금당했으며, 유명한 인권운동가 가오즈성(高智晟. 한자로는 고지성 - 옮긴이)의 단식에 동조한 혐의 등으로 41일동안 감금돼 실종되기도 했다. 당시 홍콩 등의 인권단체들이 후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베이징경제학원(北京經濟學院) 정보학과를 졸업한 후자씨는 1996년 2월 < 인민일보 > 에 90살된 일본인 노인이 사막화 방지를 위해 네이멍구(內蒙古. 몽골인들은 이 땅을 ‘몽골초원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남南 몽골’이라고 부른다 - 옮긴이)사막에 나무를 심는 기사에 감동해 환경운동가가 됐다. 후씨는 '자연의 벗'(自然之友)이란 민간단체에 가입해 사막에 나무를 심고 중앙 CCTV의 환경보호 프로그램인 '자연으로 간다'(走進自然)라는 프로그램의 피디(PD)로도 활동했다. 그 뒤 후베이(湖北), 시짱(西藏. 티베트 - 옮긴이), 칭하이(靑海. 과거에는 티베트의 일부였음 - 옮긴이) 등의 동물과 생태자원 보호 등에 노력했다. 또 2000년 7월-2004년 5월까지는 에이즈환자를 위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여기까지는 중국 정부도 후씨를 지지했다.

 

그러나 후씨는 2004년 4월 천안문학생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후야오방(胡耀邦. 한자로는 호요방 - 옮긴이) 전총서기 서거 15주년을 맞아 천안문(天安門)광장에서 헌화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후씨는 2007년 10월 중국정부가 분리주의자로 규정한 달라이라마를 지지하고 부인 쩡진옌이 달라이라마를 직접 만나고 딸이름을 짱(藏)족(티베트인 - 옮긴이) 이름으로 지으면서 중국정부에 반체제 인사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후씨는 2007년 5월 시장에서 야채(순우리말로는 푸성귀 - 옮긴이)를 사다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고 수시로 연행돼 며칠동안 구류를 사는 등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중산층의 인권의식 높아져 중국 정부 고민…허용할 경우 봇물 터지듯 폭발 우려

 

후자씨는 천광청씨의 탈출을 도운 혐의로 2012년 4월 28일 치안당국에 연행된 뒤 조사를 받고 하루만에 풀려났다. 천씨는 가택연금 기간동안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천씨의 아내와 모친도 감시자로부터 구타를 당했으며 7살난 딸의 학교길도 감시를 받았다. 천씨는 이번 탈출에 성공한 뒤 원자바오(溫家寶. 한자로는 온가보 - 옮긴이) 총리에게 보내는 동영상을 통해 "지방관리들이 자신과 가족의 자유를 빼앗은 것은 헌법위반"이라며 "법에 따른 관리들의 처벌과 가족의 안전보장 및 중국인권 개선"을 요구했다.

 

천광청씨의 요구는 중국 정부가 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실제 천씨는 2010년 9월 형만기를 채우고 출소했지만 당국은 법적 근거도 없이 천씨의 집을 포위, 감시하면서 천씨를 가택연금시켰다. 결국 천씨는 탈출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됐다.

 

중국 정부는 보시라이 사건과 관련해 원자바오 총리가 '법에 따른 처리'를 강력하게 약속한 상태다.

 

원자바오 총리 2002년 3월 14일 전인대 기자회견 동영상 →

 

http://share.renren.com/share/382581013/12135384286?from=0101010302 & ref=hotnewsfeed & sfet=110 & fin=15 & ff_id=382581013

 

만약 보시라이 전충칭시 서기에 대해 의법처리하고 천광청씨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법을 피해간다면 '이중 잣대'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천씨의 요구를 허용할 경우 봇물 터지듯 권리주장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산당이 막강한 공권력으로 인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누르고 있지만 팽팽한 풍선에 바늘구멍이 생길 경우 한 순간에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중국 헌법 제5조는 '중국은 법치국가이다'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제41조에는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해 비판과 건의 권리가 있다', 제35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가두 행진과 시위의 자유가 있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개인의 의사표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원자바오 총리가 법치사회의 실현을 천명한 이상 중국 인민들이 법률의 잣대를 들이 댈 경우 중국 정부도 무작정 탄압만 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중국은 배불리 먹는 원바오(溫飽)에서 의식주 걱정없는 중산층위주의 샤오캉(小康)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경제적인 욕구 충족뒤에 인권의식은 분출할 수 밖에 없다. 오는 10월 출범하는 시진핑(習近平. 한자로는 습근평 - 옮긴이) 체제가 집권하는 10년동안 안게 될 고민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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