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조영래 변호사의 말들

개마두리 2012. 7. 21. 15:46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며, 평생 아무런 희망도 품을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철조망은 ‘법’이다. ‘질서’다. ‘규범’이며 ‘도덕’이고 ‘훈계(가르침)’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철조망을 겹겹이 둘러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사람을 짓밟고, 그 쓰러진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쓰러져 짓밟힌 인간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괴로움’과 ‘죄의식’이라는 올가미가 덮어씌워진다.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무뢰한’으로 굴러 떨어지는 과정이고, 법과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외롭게 쫓겨나는 과정이며, 양심과 인륜을 빼앗긴 ‘비(非)인간’으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법률과 질서와 도덕과 훈계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철조망 앞에 꽁꽁 묶여 의식이 마비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생명력, 인간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힘 있는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비틀어지지 않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본 사람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나’라는 것은 없다. 일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며 밥 먹고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내’가 아니다. 참된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껍질만 남은 내 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리저리 온종일을 허덕이며 끌려다닌다.”

 

“현실은 너무나도 엄청난 큰 힘으로 그를 짓눌렀고, 그 자신의 힘은 너무나도 나약했으므로, 그는 결국 언제나 그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산송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느 날 돌연 기적과도 같은 부활이 일어났다. 그는 죽음과 좌절을 뚫고 일어나 ‘아니다!’라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20년간 밑바닥에서 쌓여온 모든 억울함과 모든 분노가 그의 답답하게 막혀만 있던 가슴을 뚫고 나와 폭발적인 힘으로, 지금껏 그를 뿌리쳐왔던 현실을 도리어 반대로 뿌리치면서 (그것을) 세게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보아온 모든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합류하여 커다란 저항이라는 불길로 힘차게 타올랐다.

 

그는 무서운 힘으로 괴로움과 비인간 바로 그 자체인 현실의 냉혈한 철의 심장부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인간이 없는 현실, 그 소리 없는 통곡의 역사를 두드리는 ‘인간선언’이라는 불꽃이 되어 승리하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전망이 보일 때 현실을 보다 철저히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다. 오늘의 현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조만간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될 때 분노하는 사람의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씨에는 기름이 부어지고 맞서 싸우는 자의 팔뚝에는 뜨거운 핏줄이 솟는다.”

 

“힘 센 것들이 판을 치는 모든 사회기구가 한결같이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응’, ‘타협’, ‘겸손’, ‘순종’, ‘온건’ 같은 ‘미덕’이다.”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외국 여성이 ‘리처드 버튼’이라는 외국 남성과 몇 번 결혼하고 몇 번 이혼했는가를 안다. 신문에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열세 살짜리 여공들이 하루 몇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신문에 안 나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외국 여성이 말을 타다가 발가락을 삐었다면 사람들은 늦어도 바로 다음날까지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신속 정확한 신문보도’ 때문이다. 그러나 강원도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묻혀서 죽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신문에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자리에 작은 기사로 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문인 것이다.”

 

-『전태일 평전』에 나온 말들을 소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