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분석] 왜 그들은 ‘바보를 만드는 시스템’을 우리 교육에 이식했나

개마두리 2024. 10. 17. 23:21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이제는 거의 여든 해인 일흔아홉 해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가까이 우리(한국의 옮긴이) 교육을 지배한 이 사악한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조선교육위원회는 왜 바보를 만드는 시스템을 우리 교육에 이식한(옮겨심은 옮긴이) 걸까?

 

첫째,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인문학 교육의 중심인 생각하는 역사교육은 흔히 승자인 지배계층이 기록한 역사(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 뒤에 감춰진 진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옮긴이) 국민이 친일 역사학자들의 기록과 전혀(완전히 옮긴이) 다른 역사, 그러니까 독립투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진짜 역사를 만나면 친일파(올바른 명칭은 왜국을 [종처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인 종일파[從日派]’ - 옮긴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 땅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둘째, 자신들의 뒤를 이어 지배계층이 될 후손을 위해서였다.

 

한번 생각해보라. 만일 피지배계층이 논어 를 읽고 공자가 잘못된 정치에 분노해 섬기던 왕(임금 옮긴이)과 국가(나라 옮긴이)를 버리고 13년간 주유천하(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함 옮긴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맹자 를 읽고 인()과 의()를 짓밟는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는 죽여서라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접한다면, 존 로크의 통치론 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 , 또는 헨리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 같은 책을 읽고 타락한 권력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면, 정통성이 없는 지배계층은 과연 어떻게 될까? 아마도 모조리 감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나는 세 해 전, 내가 운영자로 있는 카페돈의 왕국서 검열 걸리기 좋은 노래 부른 바보라는 글을 올렸는데, 그 글 말미에 < 옮긴이의 말 >이라는 내 글을 덧붙였다. 그 글은 이 글을 읽다 보니,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도대체 나는 왜 호라티우스 시인의 시들을 중학교/고등학교의 문학교과서나 세계사교과서에서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왜 전신론(錢神論)을 학교의 세계사교과서에서 만나지 못한 것일까?

 

그 때[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서기 1990년대] 한국 정부에서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배금주의를 비꼬는 교육은 하지 말 것'/'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교육은 하지 말 것'이라는 명령이라도 내렸던 것일까?

 

만약 학생들에게 이 두 글을 제대로 가르치고, 그 글들이 설명하는 사회의 타락과 모순을 그대로 가르치면, 학생들이 그것들을 그대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적용해서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에 화를 내고 많은 것을 따지고 비난하게 될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뿌리이자 기둥인 ''을 탐내는 마음을 거스르는[ 또는 비꼬는 ] 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서였을까?

 

그러나 설령 이 추측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서기 2021년 현재 ]에는 공업화와 신자유주의의 폐단[ 예를 들면, "돈이면 다 된다."는 관념이나, 인간관계까지 돈으로만 판단하려고 드는 태도 ]이 곳곳에서 드러난 지 오래고, 그렇다면 그것들과 관련 있는 배금주의나 물질만능주의를 있는 그대로 파헤치고, 비판하고, 멀리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나는 한국 교육이 이제는 이 두 사람의 글을 더 이상 '금서'로 지정해서 학생들에게 감추지 말고, 이들의 글이 나타난 사회의 배경을 더 이상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르치며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풀 '대안'을 찾을 수 있고, 한국사회의 파국을 막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그렇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때 나는 이지성 선생의 책, 그러니까 생각하는 인문학 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따라서 그 책 안에 실린 글도 알지 못했는데, 내가 두 달 전에 처음 읽은 이 글을 쓴 사람[ 이 선생 ]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니, 깜짝 놀란 것은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동지를 만난 듯해서 기쁘기 그지없다 - 옮긴이)

 

하나 논어 / 맹자 / 통치론 / 사회계약론 같은 인문고전을 읽고 사색하고 깨닫는 과정 대신, 사교육 종사가자 정리한 요약본만 잘 외워도 얼마든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타락한 인문학자들을 통해 조선(근세조선/대한제국 옮긴이)논어 맹자 때문에 망했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고전은 인문학부 교수들이나 읽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하고 비실용적인 책이라는 생각을 (한국 옮긴이) 국민의 뇌리 깊숙이 심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옮긴이) 국민은 인문고전을 멀리하게 될 것이고, 생각 없이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국[倭國] 조선 총독이었던 옮긴이) 아베 노부유키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옮긴이) 지배계층에 끊임없이 이용당하면서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조선교육위원회는 이 통치원리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그것을 옮긴이) 일제강점기(대일[對日] 항전기 옮긴이)에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없이 우민화 교육을 선택했다.

 

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 , 16 ~ 18

 

이상 생각하는 인문학 ( ‘이지성지음, ‘()문학동네펴냄, 서기 2015)에서 발췌

 

- 단기 4357년 음력 9월 15일에, '인문고전을 완역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일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