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람은 어떻게 ‘착함’을 강요당하는가

개마두리 2012. 7. 21. 15:08

 

고통받는 한 인간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이 현실 속에서 자라면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 끌려가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바로 인간이 그것(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자기 자신은 이 커다란 힘과 견주어 볼 때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힘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조만간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숙이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쪼그라들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이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에게 성실한 것을 ‘도덕적이지 않은 짓’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이라는 싹을 -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인 종으로 길들여진다.

 

속담에 ‘등 어루만지고(위로하고) 간을 빼 먹는다(빼앗아간다).’는 말이 있다. 힘센 것들은 이 길들여진 양들에게 ‘착실한 녀석’, ‘겸손한 아이’, ‘온건한 사람’, ‘성실한 놈’, ‘적응성 있다.’는 온갖 아름다운 찬사를 퍼부으며 반갑게 맞아들이고 그들의 의식을 최대한 마비시키면서 ‘양털’을 뽑는다.

 

괴로워하는 사람은 한동안 얼떨떨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는지 털을 뽑히는지 모른다. 설사 그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다만 살아남기 위해 현실의 잘못된 행태와 그로부터 오는 자신의 괴로움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때때로 무언가 ‘옳지 않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역시 자신은 ‘힘이 없으며’, 그것은 고쳐질 길이 없으므로 머리를 흔들며 그런 ‘건방진 생각’을 떨쳐버린다. ‘참음’은 그의 영원한 좌우명이 된다.

 

- 조영래 변호사의 글에서 (어법이 어색한 부분은 조금 고쳤으며, 어려운 낱말을 쉬운 낱말로 바꿈. 그러나 내용 자체는 그대로 소개함 : 옮긴이)

 

▶ 옮긴이의 말 : 그러니 여러분, 윗사람이 당신을 ‘착한 아이’라고 부르면 기뻐하지 마라. 그것은 칭찬이 아니다. ‘너는 멍청하고 부려먹기 좋은 녀석’이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착함은 강요당하는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며 배우는 것이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