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위구르인들의 농담 한 토막 - 너무 많은 것

개마두리 2012. 9. 18. 13:51

한 여관에 위구르인, 한족(漢族. 중국의 다수민족), 미국 백인, 일본인이 방을 잡았다. 그들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먼저 미국인이 가방에서 콜라가 든 캔들을 꺼내더니, 하나만 마시고 나머지는 다 뚜껑을 따서 창문 바깥으로 부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아니, 아까운 콜라를 왜 버립니까?”라고 묻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 그거요? 버려도 돼요. 어차피 우리나라에는 콜라가 차고 넘치는 걸요 뭐.”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에는 일본인이 가방에서 CD들을 꺼내더니, 하나만 CD 플레이어에 넣어서 틀고 나머지는 다 창밖으로 내다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이 “아니, 왜 그러세요? 아깝잖아요!”라고 말하자, 그는 “어차피 일본에 돌아가면 또 살 수 있는걸요. 일본에는 이런 게 너무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위구르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땅에는 한족이 너무 많아요!”라고 외치며 한족을 붙잡아서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10년 전에 들은 이야기를 기억을 되살려서 적음.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잉걸)

 

* 위구르인 :

 

튀르크(투르크) 계통인 유목민족(몽골초원에서 살았음)과 오늘날의 ‘위구르 자치구’(중국의 서북쪽에 있다)에 살던 인도 - 유럽 계통인 상업민족이 섞여서 만들어진 민족. ‘위구르’는 ‘단결’이라는 뜻이다. 위구르라는 이름은 서기 8세기부터 나온다. 한 때는 당나라를 위협한 적도 있고, 당나라를 도운 적도 있다. 테무친(존칭 칭기즈칸)에게 자발적으로 항복해 몽골족의 정복전쟁을 도왔고, 중앙아시아의 문물을 몽골족에게 소개해 원(元)나라를 비롯한 몽골족의 제국에서 지배층으로 살 수 있었다.

 

원래는 무교(巫敎. 무당들의 종교. 최준식 교수는 무속巫俗이라는 말 대신 ‘종교’를 뜻하는 무교라는 말을 쓰자고 주장한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겨 무교라는 이름을 쓴다)와 불교와 마니교와 네스토리우스교(경교景敎라고도 함)를 믿었으나, 이슬람교가 서서히 침투했고, 서기 15세기 이후에는 대부분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내가 몇 년 전, 현지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은 바에 따르면, 불교도가 남아있지만 겨우 2000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은 서기 17세기 이후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서기 19세기 말에는 ‘야꿉 벡’이라는 군주가 나타나 러시아와 서양의 무기/군대조직을 받아들이고 독립을 시도했으나, 청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당해 독립전쟁이 실패로 끝났다.

 

서기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무너진 뒤 이들은 사실상 독립을 누렸으며, 서기 1944년에는 ‘동쪽에 있는 튀르크인들의 나라’라는 뜻인 ‘동(東) 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으나, 모택동(마오쩌둥)의 군대이자, 중국 공산당의 군대인 홍군(紅軍)이 공화국을 점령해 공화국이 해체되었다(이 때 중국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한 위구르인들이 튀르키예[터키 공화국의 정식 국호]로 달아났다).

 

이후 중국은 오늘날까지 ‘신장 위구르 자치구(중국은 동 투르키스탄을 이렇게 부른다. “신장”은 한자로는 신강新疆인데, 이는 “새롭게 얻은 강역”이라는 뜻이고 청나라가 이곳을 침략/점령한 뒤 붙인 이름이다)는 우리(중국)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위구르인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동 투르키스탄이 한족(漢族)에게 지배받은 기간보다 지배받지 않은 기간이 더 많았다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어긋나고(게다가 동 투르키스탄을 정복한 나라는 만주족의 왕조인 청나라지, 한족의 왕조인 명나라가 아니다!), 위구르인은 그 때문에 사실상 한족의 조직인 중국공산당에 반감을 품고 계속 독립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