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둘째 아들이 세상의 모든 둘째 아들들에게 보내는 글

개마두리 2012. 9. 22. 19:03

 

 

 

‘지극히 개인적인 일’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나(잉걸)는 얼마 전(그러니까 며칠 전)부터 옛 이야기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세 아들(또는 세 딸)이 나오는 세계의 모든(!) 옛 이야기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고? ‘3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서른 네 해 동안 산 보잘것없는 글쟁이’인 내가 볼 때,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 불쾌했기 때문이다.

 

 

한번 따져보자. 3형제나 세 자매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맏이는 어떤 일을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막내는 같은 일을 했는데도 성공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맏이는 욕심 많고 탐욕스러우며 뻔뻔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막내는 착하고 속물스럽지 않으며 바람직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둘째는 어떤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런 사람이다 : ‘맏이처럼 실패하고, 막내와는 달리 어떤 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

 

 

‘그냥 이야기일 뿐인데, 왜 그렇게 민감해요?’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내가 어떤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막내가 착한 사람이나 뛰어난 사람으로 나오는 까닭은 현실세계에서는 막내가 - 맏이와는 달리 - ‘힘’이 없고 별로 중요한 사람으로도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막내가 꾸며낸 세계인 이야기 안에서만큼은 위로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전(前)근대사회가 집과 재산은 맏아들에게 물려주고, 이야기 속에서는 막내를 추켜세웠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조선사회는 맏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었다. 더 우울한 사실은 에도시대의 일본 사회는 맏아들만 떠받들고, 둘째 아들은 ‘밥벌레’로 여겨 푸대접했다는 사실이다.

 

 

(단, 몽골초원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자식들이 다 자라면 어버이를 떠나 뿔뿔이 흩어지고, 막내아들이 어버이를 모시며 홀로 남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둘째 아들은 현실세계에서는 맏아들에게 굽혀야 하고, 이야기 속에서는 막내와 비교당하면서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말도 들어야 하는 족속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얻는 것이 없는 - 그리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 사람들인데, 어떻게 비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옛 이야기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이야기야?’라는 의문 말이다.

 

 

내 말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둘째 아들은 맏아들이나 막내아들에 비해 정신병을 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높다고 하니까(실제로 나는 여러 번 자살하려 한 적이 있고 - 다행히 그 충동을 실행하진 않았다 -, 지금 가벼운 우울증과 비교적 무거운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다. 또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증상도 앓고 있다. 그래서 정신과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이 증상이 언제 나을지는 알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자면, 세상 사람들은 “둘째 아들”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툭하면 집을 뛰쳐나가려 들며, 어버이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심지어 그들을 거스르려고 한다. 그는 늘 어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믿는다.

 

 

뭐 좋다. 부정하진 않겠다. 나도 “집”과 ‘고향’(서류상의 고향인 ‘본적本籍’ 말이다)과 ‘고국’이 감옥 같다고 여기고, 지금은 떠날 계획을 짜고 있으니까. 그리고 겉으로는 “네.”라고 대답하고 ‘뒤’에서, ‘몰래’ “어버이”의 생각이나 명령과는 다른 일(또는 말)을 하니까. 나아가 그 때문에 “늘 어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단, “집안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형과 동생이 팽개치는 “집안일” - 예컨대 청소나 설거지나 정리정돈 - 을 스스로 맡아서 한다).

 

 

(아, 이 세상의 둘째 아들들은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구나!’)

 

 

이 글을 읽는 세상의 둘째 아들들이여, 그렇다고 너무 절망하진 마라. 아직 이 글이 뜨는 창(윈도우)을 닫을 때가 아니다 . 끝까지 다 읽어보고 나서 나가시라.

 

 

세상의 평가에 따르면, 둘째 아들은 “남과 경쟁하려 들며, 혁명가인 사람도 많다.”고 한다. “좋은 말로 하면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개혁가들이다.” (단, 나는 둘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혁명가나 개혁가가 많이 나오는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위 세대나 힘센 것들이나 맏아들이 망친 것들을 고치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과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둘째 아들”은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다!” 한마디로 수구파가 될 확률이 낮으며, 남이 이루지 못한 일을 용감하게 시도하며, 그것을 이룰 수 있다. 또 말보다는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만 앞서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낯선 것이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다.

 

 

좋은 소식은 또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둘째 아들은 “야망”과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성장한다. 그는 ‘나는 나’라고 여기고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으며,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줏대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어 그 사람의 ‘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은 되지 않을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또 그는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경쟁을 즐기고, 문제의 양면을 보는 능력도 갖추게 된다.” 잘 아시겠지만 동무(친구를 일컫는 순우리말. 조선노동당이 써먹은 나머지 ‘나쁜 말’로 낙인찍혔지만, 원래는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었다)가 많다는 건 유리한 점이지, 불리한 점은 아니다.

 

“문제의 양면을 보는 능력”은 드러난 점이나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점이나 ‘원인/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니 이는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이야기고, 이것은 문제를 푸는 방법이나 ‘대안’을 내놓을 때 한결 유리하다. 당신은 이 장점을 활용해서 해결사나 중재자나 (새로운 사상이나 이론이나 학설의) 창시자가 될 수 있다(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심리학 전공)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맏아들과 맏딸 가운데 33.3%만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이 쉽다고 말한 반면, 둘째와 막내 가운데 50%이상이 우스갯소리를 잘 한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재미있고 재치있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기 때문(와이즈먼 교수)”이다. 이 능력은 “어른이 되어서도 유지된다(와이즈먼 교수).”

 

 

둘째 아들은 단순히 “우스갯소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사람을 설득할 때에도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버이에게 사랑받으려고 쉬운 말을 한 게 아니다. 어버이와는 스물 세 해 동안 갈등했고 - 그 이야기는 이 글에 털어놓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생략한다 - ,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예컨대 역사적 사실이나 옛 이야기나 이론이나 학설]을 쉽게 풀어서 말해야 했기 때문에 ‘말하는 기술’과 ‘글 쓰는 기술’을 터득한 것이다. - 단, ‘정신적인 어버이’인 스승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말하는 기술/글쓰는 기술”을 갈고닦은 적은 있다. - 어쨌건 내가 “둘째 아들”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재미있고 재치있는 말을 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단점’으로 소개한 둘째 아들의 특성 - “집을 뛰쳐나가려고” 드는 경향이나, “어버이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심지어 반역까지 꾀한다.”는 점이나, 정신병을 쉽게 앓고,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것 - 도 좋은 쪽으로 써먹으면 ‘장점’이 될 수 있다.

 

 

한번 살펴보자. 둘째 아들은 “집” -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핏줄, 고향, 조국, 지역,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믿음[종교]나 사상이나 문화 - 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설령 그곳에서 실패했어도 ‘남’이 사는 ‘다른 세상’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가 쉬우며, “집”에 의존하는 삶을 살지 않고(따라서 “집”에 부담을 ‘덜’ 안긴다), “집”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니기 쉬운 단점(예컨대 순혈주의나, 국수주의나, 인종주의나, 광신이나, 예부터 내려온 악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약 “어버이”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그러니까 지주나 장사꾼으로 살면서 부리는 사람들을 쥐어짜고 억누른다거나, 광신도나 수구파라던가, 군중심리에 휩쓸리거나, 속물이라던가, 폭군이라던가) - 그는 “어버이의 말을 잘 듣지 않”으므로 - 이에 맞서며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고, “어버이” - 또는 윗사람 - 에게 맞서 싸우는 사람들(또는 조직이나, 세력이나, 겨레나, 지역이나, 계급이나, 인종)을 도우며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또한 (나도 며칠 전에야 우연히 알게 됐지만) 정신병 환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낄낄거리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지껄이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꼼꼼하고, 너무 섬세하고, 너무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려고 들고, 너무 자상한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라고 한다(예컨대 ‘깨끗하게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진지하게 한 나머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환자라던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사람도 정신병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이른바 ‘정상인’과는 달리 감각이나 예술성이나 사물(또는 현상)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역사 속에 나타나는 예술가나 사상가나 사회과학자 가운데는 정신병을 앓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영어사전 가운데 하나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던 정신병자가 만들었다. 그러면 그 내용이 엉망이냐고? 아니다. 오히려 가장 뛰어난 사전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내가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자신이 앓는 정신병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스스로 치료받는 정신병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 정말로 위험한 정신병자는 자기가 정상이라고 우기면서 비정상적인 짓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둘째 아들은 ‘미칠’ 가능성이 높은 대신, 그 대가로 예술성이나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가 될 확률도 높다. 또 이상주의에 매달리므로 속물이나 천박한 사람이 될 확률은 낮다. 어떤가? ‘미치는 대가’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게다가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못해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자신이 ‘실패했다.’고 여기는 사람을 막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살이라는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으니,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물론 그러려면 ‘충동’에 굴복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세상의 둘째 아들들이여,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세 아들이 나오는 옛 이야기’는 망각의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대신 당신들이 주연이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에서 - 만들어 그대로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