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

▩우리 땅, 우리 밀

개마두리 2013. 5. 26. 15:24

- 우리 밀의 원형을 찾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

 

-<메종>

 

- 입력 : 2013.05.24

 

현재 국내에선 대부분 개량된 밀이 생산되고 있다. 지금껏 먹어온 우리 밀은 엄밀히 말하면 순수한 우리 것이 아니었다. 불과 10년 내로 없어질 수도 있는 우리 밀의 원형을 찾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당찬 포부가 궂은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푸른 밀싹을 닮았다.

 

민들레 홀씨 같은 우리 밀을 꿈꾸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에 자리한 우리 밀빵 작업실에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빵 수업이 한창이었다. 첫눈에도 갓 구워져 나온 빵처럼 수업 분위기가 따끈따끈했다. 행여 방해가 될까 싶어 몸가짐, 마음 가짐이 조심스러웠다. 선생님 이언화 씨는 건물 밖을 가리키며 "저기 푸릇푸릇한 곳이 밀밭"이라고 일러주었다. 작업실을 나와 잠시 밀밭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4월 초순 오미마을의 밀밭은 새뜻했다. 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밭에는 봄이 완연했다. 푸른 양탄자를 눈으로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아직 이삭이 패지 않아 도회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밭의 성분이 가늠되지 않았지만 밭은 점차 누르스름하게 변해갈 것이고, 오는 6월이면 우리 밀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들어 안 사실이지만 밭의 한쪽 구역은 앉은뱅이밀 차지다.

 

앉은뱅이밀은 키가 작은 대신 바람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1960년대 값이 헐한(싼 - 옮긴이) 미국산 밀가루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췄으나 민간의 살뜰한 노력으로 겨우 되살아난 토종 밀이다. 이언화 씨는 이 소중한 우리 밀로 빵을 만든다.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2시간가량 홈 베이킹 수업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구례에 내려오기 전 이언화 씨는 부산 출신 부부의 시골 생활이 아니라 우리 밀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농촌살이를 미화시키는 게 마뜩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도 꺼려했다. 그래도 빵을 먹을 줄만 알았지 우리 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고, 빵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사람 입장에서는 봄볕처럼 따스한 수업 분위기가 먼저 마음에 와 닿았다. 이연화 씨의 수업은 담백하고 자연스러웠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생각을 공유하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작업실을 빼곡하게 채우는 것은 빵 굽는 냄새만이 아니었다. 해사한 웃음꽃과 정겨운 말꽃이 수도 없이 피고 졌다.

 

이날 수업에서는 통밀빵과 피자가 만들어졌다. 오븐에서 맞춤하게 그을린 통밀빵 속에는 건포도와 더불어 애호박이 박혀 있었다. 자잘한 애호박의 조각들이 보석처럼 찬연했다. 한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사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통밀빵의 질감과 아보카도의 풍미가 어금니에서 으깨졌다. 피자 토핑에는 독특하게도 취나물이 올랐다. 장작 난로에서 부풀어 오르는 취나물 피자는 눈요기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껏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피자를 음미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나물의 향미가 면면히 이어졌다. 피자 특유의 느끼함 대신 단정한 뒷맛이 감돌았다. 이언화 씨는 "오늘은 취나물을 썼지만 다른 제철 나물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 '제철'과 '신토불이'보다 더 위대한 식재료는 없다.

 

이언화 씨의 소망은 명료하다. 건강한 우리 밀이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 '월인정원'에 우리 밀빵에 관한 레시피를 자세히 소개하고, 빵 수업을 통해 '우리 밀 전도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다. 전직 웹디자이너인 그녀는 어쩌면 우리 밀을 매개로 획일화된 삶의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초여름, 오미마을의 밀밭이 황금빛으로 출렁거릴 때 다시 한 번 내려와야겠다.

 

1. 곧 오미마을의 밀밭을 채우게 될 앉은뱅이밀 싹.

 

2. 앉은뱅이밀로 만든 빵은 편안하고 구수한 맛이다. 건강한 맛이 나지만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일 먹는 밥처럼 친숙하고 질리지 않았다.

 

3. 갓 만든 애호박 우리 호밀빵. 봄에는 산에 나는 나물을 넣고 달래를 넣는데 스콘, 고사리를 넣은 베이글, 쑥 치아바타 등을 만든다.

 

4. 몇몇 파티셰(조리사 - 옮긴이)는 우리 밀은 빵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앉은뱅이밀로 만드는 스콘, 와플, 바게트, 케이크, 찐빵 등은 그 말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이언화 씨는 블로그 '월인정원'을 통해 우리 밀로도 충분히 가능한 베이킹(Baking. 빵이나 과자를 구움 - 옮긴이) 레시피(조리법 - 옮긴이)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 땅 우리 밀을 지키려 한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찾은 전남 구례의 오미마을. 드넓은 밭과 푸르른 하늘 아래 자리 잡은 아담한 마을이다. 인적이 드물고 소담한 풍경이 여느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디선가 구수하고 매혹적인 빵냄새가 진동을 한다. 오븐에서는 연신 치아바타, 베이글이 구워지고 장작을 땐 난로에서는 직화로 구운 케이크가 쏟아진다. 마치 프랑스 시골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토종 우리 밀과 호밀로 굽는 빵이라는 것이다.

 

젊은 수강생들 사이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 밀빵을 가르치고 있는 이언화씨를 만났다. 이언화 씨는 10년 전, 남편과 함께 여행 차 들른 이곳에 반해 귀농을 결심했다. "마을 주민이 차려준 밥상을 마주했을 때였어요. 제가 그동안 먹어온 음식과는 비교 불가한 순수 자연식을 먹으니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죠. 모두 산과 들, 자연이 내어준 선물이었어요." 귀농 후 몇 년 동안 매 시간, 매일이 행복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주변 환경이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알았다. 산과 들에 펜션과 별장이 세워지고 시골은 도시 사람들을 위한 소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시골의 고령화로 인해 일할 농부가 없어진 논과 밭은 조경용 묘목을 심기 위한 땅으로 임대되었다. 묘목이 땅의 양분을 모두 빨아들였고 엄청난 양의 농약이 살포되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농촌을 지키고 싶었어요. 한번 둘러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하지만 풍경이 사람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구보다 오미마을의 토박이이자 농부 류정수는 이러한 농촌의 문제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다. "농부가 제 아무리 열심히 기른 농작물이라도 정부나 기업에서 수매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니 결국 하나 둘씩 농촌을 떠나게 되었죠. 그렇게 전국의 많은 농지가 버려지고 있어요."

 

그러던 차에 빵 만들기가 특기인 이언화 씨가 몸에 좋지 않은 수입밀을 대신 할 밀을 찾던 중 앉은뱅이밀을 알게 되었다. 장마나 병충해에 늘 피해를 입는 개량종에 비해 끄떡도 없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1492년 옛 문헌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토종 밀이다. 정부가 우리밀수매를 중단하는 동시에 이 땅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으나 앉은뱅이밀을 지킨 진주 지역의 농부와 정부를 대신해 앉은뱅이밀을 사들인 '금곡정미소' 덕분에 유지되고 있었다.

 

앉은뱅이밀은 난장이밀이라고 불리는데 키 큰 개량종 밀과 달리 50~80cm로 키가 낮다. 구수하고 쫄깃한 맛이 좋아 집에서 집으로 이어진 맛이 이제는 소문이 퍼져 전국 각지에서 금곡정미소의 앉은뱅이밀이 판매된다. 또 과다 섭취할 경우 소아 당뇨, 심장병 발병 등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글루텐 함량이 수입밀에 비해 50% 정도나 낮다. 하지만 일부 문헌에만 기록되고 정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그 우수성이 저평가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밀 종자가 거의 없어요. 이제서야 토종 종자의 중요성을 알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많이 늦었죠."

 

이에 우리 밀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전남 구례의 오미마을을 살릴 수 있는 해결책이 강구되었다. 작년, 전남 구례에서는 국내 최초로 농부 홍순영이 우리 호밀을 수확했다. 그리고 올해는 농부 류정수에 의해 1000평의 밭에 앉은뱅이밀이 뿌리를 내렸다. 이대로만 잘 자라 준다면 올 6월 중순에 첫 수확과 동시에 전문가 집단의 학술적인 연구를 거쳐 앉은뱅이밀의 우수성을 기록할 계획이다. 또 마을에 제빵 시절을 갖추고 제빵을 체험, 판매까지 해볼 참이다. 노인들에게는 농촌을 떠나지 않아도 될 명분이 되고 농촌으로 돌아온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 에디터(편집자 - 옮긴이) : 이경현

 

- 글과 사진 : 노중훈(여행 칼럼니스트)

 

* 출처 :

 

http://media.daum.net/life/food/cooking/newsview?newsId=2013052416241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