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

▩“지역 개발, 협동조합이 주도”

개마두리 2013. 8. 29. 15:47

퀘벡에서 협동조합과 사회 경제를 연구하고 있는 김창진 교수는 “민(民)이 주도하고 관(官)이 지원하는 민관협력 모델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연대기금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 퀘벡/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창진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여름방학 내내 캐나다에 머물 예정이다. 퀘벡의 협동조합과 사회 경제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퀘벡의 협동조합을 한국에 소개해온 몇 안 되는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교수로부터 ‘퀘벡 모델’의 특징과 시사점에 대해 들었다.

 

기자 : 퀘벡의 협동조합을 주목한 이유는?

 

김 교수(이하 ‘김’) : 협동조합이 포함된 사회(적) 경제가 국가 정책이나 비즈니스(사업 - 옮긴이)가 아니라 운동의 개념으로 살아 있는 지역이라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 학자들은 협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 접근한다(김 교수는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사회 경제’라는 단어로 쓰기를 선호했다. ‘사회 복지’를 ‘사회적 복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기자 : 퀘벡에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김 : 사회 경제가 새로운 개념이라 정확한 통계는 없다. 비영리 부문을 포함해 전체 경제에서 8 ~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퀘벡에서는 협동조합이 각 부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퀘벡 인구가 770만명 정도인데, 어떤 협동조합에든 가입한 조합원이 2010년 말 현재 880만명으로 추계(‘추정해서 계산한 수’를 줄인 말 - 옮긴이)된다. 금융 분야에서 신용협동조합이 대단하다. ‘데자르댕’이 전체 협동조합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최대의 민간 고용주이기도 하다. 또 농업 분야에서는 퀘벡 가공식품의 50%가 농업협동조합 망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상조회사, 재택(在宅. 집[宅]에 있으면서[在] - 옮긴이) 돌봄 서비스, 주유소 체인 등도 협동조합이 활발하다.

 

기자 : 퀘벡 모델에서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라면?

 

김 :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 기업’등 협동조합 육성정책을 펴고 있는데, 퀘벡 모델을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지역 개발이라는 게 대개 정부 소관 사안이었다. 지역에 회사를 들여오든 유치원을 세우든 정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퀘벡에서는 지역개발 협동조합 네트워크(CDR)를 통해 협동조합 형태로 지역사회의 발전을 시도한다. 주정부 처지에서 보더라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게 예산 집행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효율적이다. 협동조합이 주체가 되면 조합원인 지역 주민의 욕구(needs)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된다. 관이 나서서 민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민이 주도하고 관이 재정을 지원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결합하는 민관협력 모델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자 : 민(民)이 주도하고 관(官)은 지원했다?

 

김 : 퀘벡의 협동조합이나 사회 경제를 말할 때, 퀘벡 주정부의 역할을 뺄 수가 없다. 1960년 이후에 ‘조용한 혁명(퀘벡 주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개혁을 통해 프랑스어권 퀘벡인의 정체성을 찾자는 사회개혁 운동. 협동조합 및 각종 비영리단체에 대한 육성을 동반했다)’이 진행되었다. 퀘벡당처럼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당이 들어설 때 협동조합이 활성화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심은 민간이었다.

 

1996년에는 노동계, 사용자단체, 시민사회 영역이 함께 모여 ‘경제 및 고용 정상회의’를 열었는데, 이 또한 반(反) 빈곤 투쟁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1990년대 초반 세계 경기 불황으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주정부로서도 높은 실업률 극복이 난제(難題. 어려운[難] 문제[題] - 옮긴이)였다. 정상회의 결과 ‘샹티에’가 만들어졌다. 샹티에는 일종의 사회경제단체 연석회의인데, 6개월 한시적 단체로 만들어졌다가 상설 기관이 되었다. 그러면서 ‘사회 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기자 : 협동조합 지원 기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김 : 주(州)정부, 금융협동조합, 노조가 함께 수십억에서 수천억 규모로 다양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사회 경제 지원에 나서게 되었다. 주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또 1980년대 이래로 기금, 세제 혜택 등 관련 법령을 정비했다. 결국 사회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장기 금융의 제도화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도 협동조합을 알아야 하고, 사회연대기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퀘벡 모델이 보여주는 교훈이다.

 

-『시사 IN』제 258호(서기 2012년 8월 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