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유레카]린자오의 부활

개마두리 2013. 1. 17. 10:36

‘쑤저우(소주蘇州) 주민들은 남방주말을 지지합니다.’ 중국 당국의 검열에 맞선 주간지『남방주말(南方週末)』사태에 대한 홍콩『명보』의 1월 13일치 보도 가운데 한 대목이다. 1월 12일 장쑤성(강소성江蘇省) 쑤저우의 린자오 묘 앞에 이런 내용의 펼침막이 걸렸다고 한다.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왜 린자오라는 인물의 묘 앞에서 울려퍼진 것일까?

 

린자오는 1968년 36살의 나이에 총살을 당한 여성이다. 그는 베이징대(북경대北京大) 학생이던 1957년 ‘사회주의적 민주(民主)’를 요구하는 운동에 앞장서다 우파로 몰려 체포됐다. 당시 중국을 철권통치한 마오쩌둥은 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라는 이름 아래 사상의 자유를 주고 공산당 비판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거세져 체제 위협을 느끼자 민주와 사상의 자유 등을 요구한 지식인, 학생 등을 우파로 낙인찍고 체포/처형했다. 이런 대대적인 반우파운동의 피해자는 55만 ~ 1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린자오는 모진 고문과 박해를 겪으면서도 굳건하게 양심과 존엄성을 지켰다고 한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머리핀을 펜으로, 자신의 피를 잉크로 삼아 수백 쪽에 달하는 수기를 저술하고 마오쩌둥 체제를 비판했다.

 

린자오는 공식 역사기록에서 ‘금기어’나 다름없었으나, 2004년 다큐멘터리 감독 후제의 작품 <린자오의 정신을 찾아서>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의 베이징(북경北京) 특파원과 지국장을 지낸 필립 판의 『마오의 제국』, 오늘날 중국의 지성으로 꼽히는 전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 첸리췬의『망각을 거부하라』에서도 그의 생애와 정신을 살필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일시적으로 좌절됐어도 그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결국 되살아난다는 진리를 남방주말 시위와 린자오는 보여준다.

 

-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한겨레』서기 2013년 1월 16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