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자[개마두리]의 말 : 이 글의 이름은 제가 만들어서 붙였지만, 글의 내용은 몽테스키외 선생이 쓰신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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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에 ‘트로글로다이트’라 불리는 소규모 부족 민족이 있었다네. 역사학자들이 이르기를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동물에 더 가까웠다던 그 옛날의 혈거인(동굴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인용자)들, 트로글로다이트 족의 후손들이지. 하지만 결코 선조들처럼 그렇게 괴상하게 생긴 사람들은 아니었다네. 곰처럼 온몸에 털이 북슬북슬하지도 않았고, 쌕쌕 휘파람 같은 소리도 내지 않았으며, 눈도 (다른 민족들처럼 – 인용자) 두 개였지. 그런데 그 성품이 몹시도 악독하고 사나워 그들 세계에는 어떤 공정함이나 정의의 원칙도 없었다네.
그들의 왕은 이민족 출신이었는데, 이들의 악한 천성을 바꾸어놓기 위해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네. 하지만 이들이 음모를 꾸며 그 왕을 죽이고, 왕족들까지도 모조리 죽여버렸지(원 번역문은 “모조리 몰살시켜버렸지.”지만, ‘몰살’이라는 말 자체가 ‘죄다 죽임/죄다 죽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뜻이 같은 말이 두 번 나오지 않게 하려고 “모조리 죽여버렸지.”로 바꾸었다 – 인용자).
그 후(그 뒤 – 인용자) 그들은 (새로운 – 인용자) 정부를 세우기 위해 모였고, 수많은 불화를 거친 끝에 드디어 자신들의 정부를 이끌 몇몇 대표를 선출하기에 이르렀다네. 그런데 이 대표들은 선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들 트로그로다이트인들에게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결국 그들은 또다시 이 대표들을 몰살해버리고 만다네.
드디어 자신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속박과도 같았던 대표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은 이제 오로지 자신들의 거친 본성만을 따르며 살아가게 되었다네. 그러고는 더는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기로, 다른 사람의 이익은 전혀(조금도 – 인용자)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로, 그렇게들 다 같이 합의를 보기에 이르렀지.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 방안에 모두 흐뭇해했다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죽도록 일할 필요가 뭐 있어? 오로지 내 생각만 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난 내게 필요한 것은 뭐든 다 손에 넣고 말 거고, 이를 위해서라면 다른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이 모두 빈곤한 생활을 하든(삶을 살든 – 인용자) 말든 전혀(조금도 – 인용자) 신경쓰지 않을 거야.’라고(하고 – 인용자) 생각하면서 말일세.
그러던 중 땅에 씨를 뿌리는 달이 되었지. 사람들은 모두 ‘내가 먹고 살 만큼의 밀을 경작할(기를 – 인용자) 밭만 갈아야겠군. 내게 그 이상은 필요 없잖아. 괜히 쓸데없는 고생은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네.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의 이 작은 왕국은 그 땅의 성질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네. 산악 지대의 메마른 땅이 있었는가 하면, 수많은 개울을 끼고 있는 저지대의 땅도 있었지. 그해는 가뭄이 매우 심해 고지대에 있는 땅들이 예외 없이 모두 경작에 실패하고 말았다네. 하지만 개울물 덕분에 급수를 받을 수 있었던 땅들은 풍부한 수확을 할 수 있었지([농작물을] 풍성하게 거두어들일 수 있었지 – 인용자). 결국 산악 지대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굶어 죽고 말았는데, 그 이유(까닭 – 인용자)인즉 매정한 저지대 사람들이 이들에게 자신들의 수확물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네.
이듬해에는 비가 아주 많이 내려 산악 지대의 땅들이 그야말로 굉장한 풍작을 맞았다네. 하지만 저지대의 땅들은 모두 침수되고 말았지. 또다시 절반의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이 굶주림 속에 몸부림쳤지만 고지대에 있던 다른 절반의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은 이들에게 지난해의 저지대 사람들만큼이나 몹시도 매정하게 대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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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트로글로다이트인에게 아주 아름다운 부인이 하나 있었다네. 그런데 이웃집 남자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 나머지 그만 그녀를 납치해버리고(잡아가고 – 인용자) 말았지. 화가 난 남편은 크게 싸움을 일으켰고, 두 남자는 온갖 욕설과 주먹다짐을 벌인 끝에 결국 공화국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신망(信望. ‘믿고[信] 바람[望]’ → 믿음과 덕망 : 인용자)을 받고 있었던 한 남자에게 그 판결을 맡기기로 했다네. 이윽고 이들은 그 사람을 찾아가 각자 그에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려 했지. 그러자 그가 말했네.
“이 여인이 당신의 여자든, 아니면 그대의 여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난 갈아야 할 밭이 있소. 내 일을 내팽개쳐두고 일부러 시간을 할애해 당신들의 분쟁을 해결해준다거나 당신들의 일을 돌봐주지는 못하겠소. 그러니 제발 당신네 분쟁으로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시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두 남자만 남겨둔 채 훌쩍 자신의 경작지로(자신이 일구는 땅으로 – 인용자) 떠나가 버렸다네. 여인을 빼앗아간 이웃집 강탈자는 여인의 남편보다 훨씬 더 힘이 셌는데, 그 여인을 돌려주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네. 부인을 빼앗긴 남자는 결국 이웃 남자의 부당함과 판결을 의뢰했던 그 남자의 매정함을 뼈저리게 느낀 채 실의(失意. ‘뜻[意]이나 의욕을 잃음[失]’ → 실망 : 인용자)에 빠져 돌아와야만 했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샘물을 길어 오던 젊고 아름다운 여인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네. 더 이상 부인이 없게 된 그는 이 여인이 마음에 들었지. 게다가 그녀가 바로 조금 전 자신이 판결을 맡기고자 했던 그 남자, 자신의 불행에 전혀 아랑곳하지도 않았던 바로 그 남자의 부인임을 알게 되자, 더더욱이나 마음에 들었다네. 그는 여인을 붙잡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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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비옥한(기름진 – 인용자) 땅을 소유하고 있는(가진 – 인용자) 한 남자가 있었네. 그는 아주 정성껏 그 땅을 경작했지(일구었지 – 인용자). 그러던 어느 날 두 명의 이웃이 합심(合心. [여러 사람이] 마음[心]을 한 데 합함[合] - 인용자)하고는 그를 집에서 쫓아내고 그의 땅 또한 가로챘다네. 그러고는 자신들에게서 그 땅을 강탈해 가려는 자들에게 맞서기 위해 서로 동맹을 맺었지. 실제로 이들은 그 후 몇 달 동안은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다네. 그런데 이들 중(가운데 – 인용자) 한 명이 혼자서 모두 독차지할 것을 둘이 함께 나누어 가진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었지. 마침내 그는 다른 한 명을 죽이고 홀로 그 땅의 주인이 된다네. 하지만 그 위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네. 두 명의 또 다른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이 공격해 왔고, 홀로 저항하기에(맞서기에 – 인용자) 너무도 나약했던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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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어느 트로글로다이트인이 양모(羊毛. 양털 – 인용자)를 팔고 있는 한 상인을 보고는 그 값을 물었네. 그러자 상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이 양모 값으로는 당연히 밀 두 되를 살 정도의 값만을 바라야 하지만, 네 배로 더 비싸게 팔아 여덟 되를 사야겠어.’
양모가 꼭 필요했던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상인이 요구하는 대로 값을 지불해야만 했네. 그러자 상인이 말했지.
“이제 밀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아주 기쁘오.”
이 같은 상인의 말에 그 남자가 대꾸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밀이 필요하시오? 내게 내다 팔 밀이 좀 있소이다. 다만 그 값에 좀 놀라실 거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밀값이 아주 비싸 이 나라 거의 전역에 굶주림이 만연해 있다오. 하지만 내가 낸 돈을 되돌려준다면 내 기꺼이 당신에게 밀 한 되를 줄 용의가 있소. 그렇지 않고서는 팔 의향이 없소이다. 설사 당신이 굶어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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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끔찍한 전염병이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의 땅을 휩쓸게 되었다네. 이에 이웃 나라에서 노련한 의사 한 명이 찾아와 아주 시기적절하게 약을 잘 처방해주었지. 그리하여 그의 손을 거쳐 간 환자들은 모두가 다 완쾌될 수 있었다네.
전염병이 모두 퇴치되자, 의사는 자신이 치료해주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 치료비를 요구했네. 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거절하지 않았겠나. 결국 의사는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한 채 그 기나긴 여행에 기진맥진하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땅에 또다시 같은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하게 그 땅을 휩쓸고 있다는(휩쓴다는 – 인용자) 소식이 그 의사의 귀에도 들려오게 된다네. 이번엔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트로글로다이트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그 의사를 찾아갔다네. 그러자 의사가 말했네.
“불의의 인간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 트로글로다이트 인들을 일컫는다 – 임용자)이여! 썩들 돌아가시오! 당신들의 영혼에는 지금 당신들이 치유하고자 하는 그 병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소.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공평성의 원칙도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들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자리잡고 살아갈 자격이 없소. 하늘이 노하시어 당신들을 벌하고 계시거늘, 내 (트로글로다이트 인들의 전염병을 치료함으로써 – 인용자) 감히 그 정의로운 노여움 앞에 맞선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이상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선생의 서간체 소설인 『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 ‘이자호’ 옮김,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서기 2022년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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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4357년 음력 10월 22일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과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이만한 글이 없다.’고 여겨, 『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 에 실린 열한 번째 ‘편지’를 소개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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