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영화 <미이라>가 왜곡한 고대 ‘이집트’의 천재

개마두리 2005. 12. 22. 22:07
 

*인용한 글 : 붉은색


할리우드 영화인 <미이라>(서기 1999년작)에는 ‘이모텝’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영화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고대 ‘이집트’에서 활약한 제사장인데, 파라오의 정부인 ‘아낙수나문’과 사랑에 빠진다. 파라오가 이를 눈치채자, 아낙수나문은 자결하고 이모텝은 혀를 잘리고 눈을 뽑힌 뒤 사람의 살을 파먹는 풍뎅이들이 우글거리는 석관에 산 채로 갇히는 형벌(영화에서는 이를 ‘홈다이’라고 부른다)을 받는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이집트’ 황실은 근위대인 ‘마자이’에게 그의 관을 ‘하마납트라’라는 도시에 묻은 뒤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는 그가 되살아나면 “인류 최악의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200여년 후인 서기 1925년, 영국인인 ‘릭 오코넬’과 ‘에블린’, ‘조나단’은 하마납트라에 가서 고문서와 보물을 찾는데, 우연히 이모텝의 미이라를 발견하고 그것을 박물관에 가져가려고 한다(정확한 연대를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영화의 속편인 <미이라 2>에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연대가 나오기 때문이다. <미이라 2>에는 릭과 에블린이 ‘서기 1933년’에 이모텝과 ‘스콜피온 킹(전갈왕)’을 저지하러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그 때 여덟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간다. 따라서 아들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인 <미이라 1>은 8년 전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연대를 계산해보면 1933 - 8 = 1925 가 되기 때문에, 나는 <미이라 1>에서 다루는 사건이 일어난 연대가 서기 1925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에블린이 흑(黑)마술서를 읽는 실수를 저질러 이모텝이 되살아나고 말고, 그는 그의 연인을 되살린 뒤 그녀와 함께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오코넬 일행은 이모텝을 저지하기 위해 ‘마자이’와 손을 잡고,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아낙수나문의 부활을 막고 이모텝에게서 불사(不死)의 힘을 뺏은 뒤 그를 저승으로 되돌려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후 마자이의 대장은 오코넬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일행은 낙타를 달리며 사막을 벗어난다. 영화의 내용만 보면 이모텝은 ‘응징받아 마땅한 악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역사기록과 유물,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는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모텝은 악인이 아니며, ‘재앙을 일으키는 괴물’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는 왕에게 미움을 사 형벌을 받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죽은 뒤에는 ‘의술의 신’으로 모셔지기까지 했다. 할리우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괴물’로 그린 영화를 찍었으며, 이는 ‘역사 왜곡’과 ‘위인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옛 ‘이집트’의 역사기록과 ‘이집트’의 유적을 바탕으로 영화가 이모텝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알아보자.

 

▶ 실존 인물 임호텝


우선 영화의 이모텝은 모래폭풍을 일으키고, 입에서 수많은 벌레를 토해내 상대를 공격하며,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 그들을 조종한다. 또 그는 “인간의 몸을 흡수하여 자신의 몸을 만들고, 몸이 다 만들어지면 ‘재앙의 왕’이 되어 이 세상에 군림할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묘사대로라면 그는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저주받은 시체”이자 “사막의 무한한 힘을 가진 사악한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했던 인물이다. 서기 1926년 1월 2일에 발굴된 ‘이집트’ 석상의 버팀돌에 “선대 이집트 왕의 제 1 서열이자 후대 왕의 서기관이며 위대한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 임호텝”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이다(그 전까지는 ‘이집트’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임호텝을 “가공의 인물”로 여겼다).


그리고 역사서에 나오는 ‘이모텝’은 ‘마왕’이 아닌 ‘구원자’다(역사학계는 ‘이모텝’을 ‘임호텝’이라고 부르는데, 고대 ‘이집트’인은 그를 ‘이모우시스’라고 불렀으므로 이것도 정확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임호텝’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모우시스’대신 ‘임호텝’이라는 이름을 쓰겠다. 나는 언젠가는 이 땅의 사람들이 그를 ‘임호텝’이라는 영어 이름 대신 ‘이모우시스’라는 ‘이집트’식 이름으로 부르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희망한다). 그는 “수천 개의 비문과 문서에서 기적과 전설마다 등장한 이(디스커버리 채널)”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 ‘이집트’의 문서에 따르면)


― 그는 황무지를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는 땅으로 바꾼다.


― 또 그는 불임체질인 여인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 그는 말라붙은 강바닥에 생명수를 채워 넣기도 한다.   


(그가 죽은 뒤 수 세기 후에 쓰여진 문서에 이런 묘사가 나온다!)


그러니까 그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는커녕 오히려 새 생명을 안겨주는 사람이었고, 모래를 퍼부으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른 땅에 물을 대는 사람이었으며, 벌레를 조종하는 대신 곡식을 키워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할리우드는 역사서에 나오는 이런 평가들을 싹 무시하고 옛 ‘이집트’인이 신처럼 받들어 모신 인물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그들이 저지른 첫 번째 잘못이다.


그리고 영화에는 세티 1세가 임호텝과 아낙수나문의 불륜을 눈치채자, 두 사람이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티 1세는 서기전(기원전) 1290년(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296년 전)에 즉위한 파라오고 임호텝은 서기전 2700년(지금으로부터 4706년 전)에 피라미드를 세운 사람이기 때문에 둘은 애초에 만날 수가 없다. 게다가 역사서에는 세티 1세가 시해당했다는 기록도 없으므로 이 부분은 완전한 허구다. 4700여년 전의 사람이 3300여년 전의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한 시나리오 작가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저지른 두 번째 잘못이다.


임호텝이 ‘홈다이’라는 형벌을 받은 뒤 ‘하마납트라’에 묻혀 ‘마자이’의 감시를 받는다는 설정도 사실과 다르다. 학자들은 그가 하마납트라가 아닌 ‘사카라(Saqqara)’라는 공동묘지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그가 형벌을 받은 뒤 오랫동안 감시를 받을 정도로 나쁜 사람이었다면 (‘이집트’ 땅의 사원인) ‘필라’와 ‘카낙’과 ‘티브스’와 ‘룩소르’에 그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질 리가 없으며, ‘이집트’ 사람들이 그가 죽은 지 2백년이 지난 뒤 그를 신격화할 리도 없다.


(‘이집트’ 사람들이 임호텝을 신으로 섬겼다는 사실은 외국인인 엘라스[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병에 걸리거나 불구인 순례자들이 치료를 받으려고 임호텝의 무덤을 찾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들이 임호텝을 ‘명약名藥의 신’으로 섬겼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무덤과 그를 모시는 사원이 “치료와 찬양을 하던 장소(디스커버리 채널)”였고, 수천 명의 순례자가 그의 신상을 들고 다니며 제단을 찾아온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리라)


따라서 만약 할리우드가 역사서를 읽을 줄 몰라서 임호텝을 악마로 그린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그의 명예를 고의로 훼손한 셈이다. 이것이 그들이 저지른 세 번째 잘못이다.

 

▶ 임호텝의 삶과 업적 1 - 최초의 피라미드 설계자         


말이 나온 김에 임호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작가이기도 했고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다.” 원래 그는 “돌항아리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나 ‘조세르’ 왕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는 “재상이자 궁중 건축가”가 되어 이름을 떨쳤는데, 자신의 재능을 정치와 건축에만 쓰지 않고 다른 분야에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가 모시던 파라오인 조세르를 위해 세계 최초로 피라미드를 설계했으며, “문명 시작 당시 최고 강대국의 제사장이자 총리(디스커버리 채널)”로 일하면서도 의술을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의학의 아버지(디스커버리 채널)”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그가 피라미드를 세우기 전에는 “길고 낮은 직사각형 진흙 구조물”인 ‘마스타바(아랍 말로 “벤치”라는 뜻. 이 무덤이 벤치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에 묻혔는데, 그가 ‘계단식’ 피라미드를 생각해 낸 뒤부터는 더 이상 마스타바를 짓지 않고 대신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으며, 이후 피라미드는 천 년 동안 꾸준히 세워졌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이집트’ 역사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마스터바는 피라미드보다 규모가 작고 모양도 단순하다. 전자는 “주로 단층으로 축조(렌초 로시)”된 데 비해 후자의 선두주자인 계단식 피라미드는 마스터바 여러 개를 차례차례 쌓아올렸기 때문에 더 크고 더 높은 것이다. 전자의 높이는 겨우 몇 미터지만, 후자의 “높이는 약 60m이고 밑변은 120m와 160m(렌초 로시)”나 된다면 두 무덤의 규모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감하실 수 있으리라. 파라오들이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고른 까닭도 더 크고 더 높은 건물을 지어야 자신들의 권위가 유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조세르 왕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었고, 그 미이라는 얼마나 잘 보존되었는지 지금까지 “발톱과 힘줄이 보일 정도(디스커버리 채널)”다(학자들은 그가 미이라를 만들 때 내장 기관의 위치와 인체의 구조를 알아냈고, 그 지식을 환자 치료에 응용했으리라고 추정한다).


또 계단식 피라미드를 쌓을 때 동원한 인부들이 공사장에서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그는 공사장 옆에 인부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최초의 병원을 세웠다(그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병과 상처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리라).

 

▶ 임호텝의 삶과 업적 2 - ‘이집트’ 최초의 의사

그의 영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기전 1550년(지금으로부터 3556년 전)의 ‘이집트’ 문서에는 48개의 외상 치료법이 적혀 있는데(이는 엘라스[그리스]인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처방보다 무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다!), 이중에는 상처에 꿀을 바르는 처방이 있다. 고대 ‘이집트’ 의학을 연구하는 내과의사인 ‘햄디 엘라페이’ 박사(‘이집트’인)의 말에 따르면 꿀은 살균 효과와 세균 억제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연고로서는 “대단히 좋은 재료”였다(물론 옛 ‘이집트’의 의사들은 꿀을 바른 곳에 붕대를 감아 상처에 파리나 개미가 꼬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옛 ‘이집트’의 의학은 단순히 주문이나 기도에 기대지 않고, 이처럼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효과가 있는 것들(디스커버리 채널)”이었던 것이다. 문서가 3560여년 전의 것인데 그게 어떻게 4700여년 전의 사람인 임호텝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보실 수 있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문서의 처방전은 “임호텝의 것일지 모를 고대 이집트 의학서적(햄디 엘라페이)”인 ‘에드먼드 스미스 파피루스’에도 나오는 것이고(그 파피루스에는 꿀의 치료 효과를 적은 구절이 있다) 임호텝이 ‘이집트’ 최초의 의학 서적을 집필했다는 견해(이는 엘라페이 박사의 견해다)가 있기 때문에, 그 문서를 쓴 사람이 자기보다 1140년 전에 살았던 ‘대선배’ 임호텝의 책을 읽고 그 책의 처방을 참고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임호텝이 죽은 뒤 2천여년이 흐른 뒤에야 문명을 꽃피운 엘라스(그리스) 사람들이 그를 “그들의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와 동일시(同一視)”[라이어널 캐슨]한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는 역사학자들에게 “세계 최초의 천재(디스커버리 채널)”라는 찬사를 들을 만한 사람이며 역사서가 그의 이름을 적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 일그러진 상혼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      


그러면 할리우드는 왜 이런 훌륭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그 의문을 풀려면 먼저 <미이라>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작품은 서기 1932년에 나온 같은 이름의 영화를 재구성(리메이크)한 것인데(그 영화에도 임호텝이 나온다), 그 영화가 나오기 11년 전(그러니까 서기 1922년) 투탄카멘 왕의 무덤을 연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그곳에서 “왕의 사후세계를 방해하는 자들은 ‘임호텝’의 이름으로 저주를 받으리라.”는 문장을 찾아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을 때 이를 ‘임호텝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기 1931년 학자들이 고대 ‘이집트’의 문서를 해독해 그가 마법사가 아닌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후 임호텝의 이미지는 ‘왕의 사후세계를 보호해줄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할리우드는 이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미이라 붐을 일으키기 위해’ 임호텝이 되살아난 미이라로 나오는 영화를 찍었고, 그 때문에 현재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미이라의 공식적인 이름이 임호텝이 된 것이다.


이후 영화가 잊혀지면서 임호텝이 괴물이라는 인식도 사라지는 듯 했으나, (그 인식은) 서기 1999년 할리우드가 영화를 재구성하면서 세계 시장에 내놓은 뒤 되살아났으며, 역사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의 잘못된 내용을 받아들여 옛 ‘이집트’의 위대한 인물을 ‘죽어 마땅한 괴물’로 기억하게 되었다.


이는 잘못된 현상이며 (할리우드가 아닌 다른 영화사에서라도) ‘인간 임호텝’을 다룬 전기(傳記)영화를 만들어 임호텝과 옛 ‘이집트’의 참모습을 알리지 않는 한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집트’ 공화국의 영화사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오락영화는 사람들의 역사인식/타국인식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 ‘지금, 당장, 곧’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견해를 덧붙이는 바이다. 부디 이 모자라는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빈다.


*덧붙임 1 : 내가 이집트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붙이는 까닭은 그것이 한 나라의 ‘진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이귑토스(Aigyptos. '독수리의 땅’이라는 뜻)‘라는 엘라스(그리스) 말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오늘날의 ’이집트‘ 아랍인들은 자신의 나라와 수도를 ’미스르(Misr. 아랍어로 ‘도시’라는 뜻)'라고 부른다(마치 이 나라가 ‘한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갖고 있어도, 아랍세계에는 ‘꾸리’, 러시아에는 ‘까레이츠’, 프랑스에는 ‘꼬레’, 에스파냐에는 ‘꼬레아’, 영국에는 ‘코리아’라고 알려졌듯이 말이다).


*덧붙임 2 :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지역을 케미, 곧 ‘검은 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강물이 범람한 뒤 강물이 싣고 온 검은 퇴적물로 덮이기 때문이다. 이 퇴적물 때문에 이 지역은 아주 비옥했다(렌초 로시).”  그런데 미스르의 곱트 교인(유럽에 기독교가 퍼지기 수백 년 전부터 미스르에 뿌리내린 토착 기독교)들이 쓰는 곱트어로도 ‘이집트’가 ‘케미Kemi'다. 따라서 우리는 곱트 교인들이 옛 미스르 사람들의 직계 후손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이집트 사람들』(렌초 로시 지음, 서정민 옮김, 사계절, 서기 2003년)


―「실존인물이었던 영화 Mummy의 주인공 임호텝이란 누구였나」(http://blog.naver.com/caribe/40000763995)


―『古代 이집트 : 라이프 인간세계사』타임라이프 북스, 서기 1981년(라이어널 캐슨 교수 지음)


― 디스커버리 채널 다큐멘터리 : <임호텝의 사라진 미이라>


―『십자군 이야기』2권 (김태권, 길찾기, 서기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