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1181

중화 사상과 민족주의 – 2

2. ‘중국’ ‘천하’ ‘화[夏]’ ‘이’ 개념의 다층성 (우리는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중화사상을 ‘중국’ ‘천하’ ‘화(華[夏])’ ‘이(夷)’의 개념으로 일단 분해할 수 있다. 따라서 중화사상은 이 개념의 총합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은 췌언(贅言.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 – 옮긴이)을 요하지(‘필요로 하지’를 줄인 말 – 옮긴이) 않지만,  (만약 – 옮긴이) 각 개념들이 모두 다층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면 그 조합 여하에 따라서 중화사상 역시 다양한 성격으로 존재하였고,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에 상응하여 다양한 논리를(때로는 상반되기도 한) 제공하였을 것이다.  필자(이 글을 쓴 사람인 이성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 옮긴이)가 이미 선학의 연구로 상식화된(상식이 된 – 옮..

갈마(역사) 2024.08.21

중화 사상과 민족주의 – 3

3. 화/이와 동아시아의 질서 전장(이 글의 제 2편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중국’과 ‘천하(순수한 배달말로는 “누리” - 옮긴이)’는 그 구체적인 공간과 범위는 물론(勿論. 말할 것[論]도 없고[勿] - 옮긴이) 주체인 ‘화(華)’의 민족적 실체도 유동적일 수 있다. 그러나 중화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나라 – 옮긴이)와 민족(겨레 – 옮긴이)은 ‘화’(천자의 군현제하[군현제 아래 – 옮긴이]에 통일된 단수)와 ‘이’(각기 그 군왕[君王 - 임금]의 지배를 받는 복수)로 구분되며, ‘이(夷)’의 본질적 속성이야 어쨌든 그들이 ‘화’에게 ‘불신(不臣. 신하[臣]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음[不] - 옮긴이)’의 태도를 보이거나 ‘화’의 안녕을..

갈마(역사) 2024.08.21

중화 사상과 민족주의 - 4 (끝)

4. 여론(餘論. ‘남은[餘] 말[論]’ → 주된 의논 뒤의 나머지 의론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 중화 사상의 근대적 변용 서양 제국주의 열강이 동아시아로 밀려와 (그곳에 있는 나라들에 – 옮긴이) ‘만국공법(萬國公法. 오늘날로 치면, 『 국제법 』 - 옮긴이)’에 기초한 국제 질서로의 편입을 강요하며 통상(通商. 다른 나라와 교통하며 장사함 – 옮긴이)을 요구하였을 때, 기본적으로 중화사상의 틀을 유지하며 ‘중국’ 5)의 가치와 ‘국체(國體. 나라의 형태 – 옮긴이)’를 각각 ‘중화’로 자부하던 중국(사실은 제하[諸夏]가 아닌 청나라 – 옮긴이)/조선(근세조선 – 옮긴이)과 일본의 일차적인 대응이 모두 그것과 이질적인 (특히 禮敎[예교 – 옮긴이]와 國體에 반하는[를 거스르는 – 옮긴..

갈마(역사) 2024.08.21

[제하(諸夏)사] ‘중원’의 복잡함을 비판하고 ‘서융’의 간략함을 칭찬한 유여(由余)

▶ 서융(西戎) : 제하[諸夏]의 서북쪽인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동남부와 영하(寧夏) 회족 자치구에 살던, ‘한족(漢族)’이 아닌 겨레를 일컫는 말. 융왕(戎王. ‘서융’의 임금. 참고로, 왕[王]은 춘추전국시대에는 천자만 쓸 수 있는 명칭이었으므로, 서융의 힘이 셌고, 그래서 이른바 ‘중원’이 이들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은 진(秦)에 유여(由余)를 사신으로 보냈다. 유여의 선조는 (서주[西周]/동주[東周]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므로, ‘진짜 중국’이자, ‘진짜 중원’이라고 볼 수 있는 – 옮긴이) 진(晉)나라 사람(그러니까, ‘진짜 한족[漢族]’ - 옮긴이)인데, 융(戎) 지역으로 달아났으므로, 유여는 진(晉)나라 말을 할 줄 알았다. 융왕은 (진[..

갈마(역사) 2024.08.13

[고침] 주일대사는 왜 일왕의 '국빈 방한'을 거론했나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의 히,스토리] 윤덕민 대사의 발언이 위험한 이유 윤석열 정권이 일왕(천황)의 국빈 방한을 거론했다. 3일 자 지지통신>(의 기사인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새로운 선언으로 역사인식 재확인을... 국교 60년 만에 국빈방문 기대'에 따르면, 귀임을 앞둔 윤덕민 주일대사는 인터뷰에서 "내년에 상호 국빈방문할 수 있으면 좋다"라고 발언했다. 지지통신은 그가 "국빈이나 국빈대우의 왕래를 기대"했다고 전했다. "국빈이나 국빈대우"라는 표현을 썼다. 국빈으로 초청하겠다는 건지 국빈예우로 초청하겠다는 건지 모호할 수 있으나, 형식적 국가원수와 실질적 국가지도자가 병존하는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 상황에서 윤 대사의 발언은 일왕(왜왕[倭王] - 옮긴이)의 국빈 방문과 총리의 국빈대우 방문..

갈마(역사) 2024.08.08

동아시아에서 옥(玉)이 보석으로 대접받은 까닭

갈마(‘역사[歷史]’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를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아는 이야기지만, 모든 귀금속이나 보석은 자신이 지닌 특성 때문에 ‘귀한 물건’으로 대접받거나 ‘재물’/‘재산’으로 인정받았다. 예를 들어, 은(銀)은 독극물이나 상한 음식에 닿으면 검게 바뀌어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특성이 있어서 귀금속으로 인정받았고, 금(金)은 녹슬지 않기 때문에 귀금속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귀금속으로 인정받은 옥(玉)은 무엇 때문에 ‘보석’의 한 갈래로 인정받았을까? 그것은 옛 동아시아 사람들의 믿음(내지는 관념) 때문이었다. 내(글쓴이)가 지지난 해에 옛 물건을 다루는 장인(匠人 : 기술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옛 동아시아 사람들은 옥을..

갈마(역사) 2024.08.03

[아메리카사] 오늘날에 되살려도 될 만한 메히까 제국의 법과 관행

(흔히 ‘아스테카’로 불리는 제국의 바른 이름은 ‘메히까’다.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카페 게시판의 글인 「 ‘아스테카’의 또 다른 이름이자 참 이름 」을 찾아서 읽어보라 : 글쓴이 개마두리) (이 글에서 초록색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글쓴이가 덧붙인 주석이다) -------------------------------------------------------- 메히까 제국의 법과 관행들 가운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고, 오늘날에 되살려도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 간단히 소개한다. 1. 메히까 제국에서는, 같은 죄를 지었어도 신분이나 직위가 더 높은 사람이 더 엄하고 가혹한 벌을 받았다(똑같이 성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일반인의 아들이면 유죄 판결을 받고..

갈마(역사) 2024.07.25

[세계사] 자위대 야스쿠니 참배, “옛 일본군 시대 돌아가려는 시도” [인터뷰]

- 일본 시민단체 종교 지도자 3인 인터뷰 - “‘나라 위해 목숨 바치는 영광’ 심으려는 것” - “패전 이전 ‘옛 일본군 체제’ 사상 부활 의도” - “유사시 전쟁 참가할 자위대 만들려는 것” 일본 국민이 골든위크(황금연휴 : 4월 29일 ~ 5월 6일) 기간에도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는 날이 있다. (바로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양력 5월 – 옮긴이) 3일 ‘헌법기념일’이다. 전쟁 포기를 담아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 『 헌법 』 9조를 개정하려는 우익 진영에 맞서고자 ‘평화와 생명과 인권을! 5/3 헌법 집회 실행 위원회’가 매년(해마다 – 옮긴이) 주최해 온 집회의 10주년을 맞은 이 날, 도쿄 ‘아리아케’ 방재공원엔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최근 일본 자위대의..

갈마(역사) 2024.07.16

[ 개인의 역사 ]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 '한 번 더 시도'

(전략) P.66 가. 1998년 4월 26일. 내 인생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비즈니스 세계에 갓 들어온 나는 40명의 팀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행사는 내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프레젠테이션이 막 시작되었을 때 모습을 보인 사람은 겨우 8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이 일이 내게 맞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분명 내게 잘 어울리는 다른 일이 내 인생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휩싸였다.  깊은 좌절과 실망에 빠진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 않았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생각에 몰두했다. 그리고 전에 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갈마(역사) 2024.07.14

※ 일제 침략 증거 지키는 일본인 “한국은 왜 스스로 피해 증거를 파괴하나”

밝은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는 부각하고 어두운 역사를 감추고 싶은 것은 민족국가의 숙명이다(실은, 종교단체나 특정 인종이나 지역사회나 기업도 이건 마찬가지다 – 옮긴이). 국민(또는 시민 – 옮긴이)이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국가 존립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역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풀이 – 옮긴이)이 작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작업을 주변국과의 마찰도 불사하고 추진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 수정주의’, ‘역사 왜곡’이라 부른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우경화하고 있는(우경화‘하는’ - 옮긴이)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은 해당 사례의 대표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돕는 것..

갈마(역사) 202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