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1130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1)

[ ]안의 글자 : 한국식 한자발음(예 : ‘야마구치 에이노스케(山口 銳之助[산구 예지조]’에서, “산구 예지조”가 한국식 한자발음임) ‘미우라 요시마사(三浦 芳聖[삼포 방성])’라는 인물이 있다.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04년에 태어나 1971년에 사망했다(그러니까,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서, 일곱 살이던 해에 대한제국의 멸망 소식을 전해 듣고, 요시히토[연호 ‘다이쇼’] 왜왕이 다스리던 서기 192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일 때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냉전이 시작된 지 스물네 해가 지난 뒤에 세상을 떠난 일본인인 셈이다 – 옮긴이). 그는 죽기 일 년 전인 1970년(서기 1970년대는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에게 “답게 들고 일어나라!”고 부추긴 때이기도 하다 ..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2)

▶ 메이지 유신은 남북조시대에서 멸망한 남조(南朝)가 476년 후에 성공한 쿠데타였다? 야마구치는 이 건을 즉시 전(前)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田中 光顯[전중 광현]. 1843~1939)’ 백작에게 상담했다. 다나카 백작(다나카 미쓰아키 – 옮긴이)은 (왜국 에도 막부의 – 옮긴이) ‘도사’ 번( : 영지)의 번사(藩士. 제후인 번주[藩主 : 영주]를 모시는 무사[武士. 줄여서 士] - 옮긴이) 출신으로, 도사 번의 근왕당(왜왕을 모시는 무리 – 옮긴이)에도 참여했다가, ‘다카스키 신사쿠’의 제자가 되어 조슈 번을 위해 일했고, ‘나카오카 신타로’의 육원대에도 가담했다. 나카오카 피살 이후, 부대장이 되어 보신전쟁(메이지 시대 초기에 왜국에서 일어난 내전 – 옮긴이)과 세이난 전쟁(역시 메이지 시대..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3)

▶ 메이지 왕은 조슈 번 조선인 부락 출신 기병대원을 바꿔치기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잘 읽으시도록! - 옮긴이) 그런데 경악할 만한 반전이 또 있다. 『 철저하게 일본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 의 저자 미우라 요시마사는 다나카 백작이 말하는 이 이야기가 완전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이 비사(祕史. 숨겨진[祕] 갈마[史] →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 : 옮긴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는 사람 가운데는 자신 말고 사이온지 긴모치밖에 없다는 다나카 미쓰아키의 말은 정확하다. 사이온지 긴모치는 고메이 천황의 실제 아들인 무쓰히토 친왕(睦仁 親王[목인 친왕])의 유년기를 지켜보았다. 당연히 조슈(오늘날의 왜국 야마구치 현. 혼슈 섬 서쪽 끝에 있다 – 옮긴이) 기병대 출신의 ‘大室寅之祐(..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4)

▶ 이와쿠라 도모미, 고메이 왕에 이어 무쓰히토 왕자도 독살하다? 그럼 진짜 무쓰히토 왕자(그러니까, 고메이 왜왕의 친아들이자, 원래 다음 왜왕이 되었어야 했던 사람 – 옮긴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이와쿠라 도모미”가 고용한 의사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와쿠라는 (왜국 – 옮긴이) 국내 행정 전반과 궁중(宮中. 대궐 안 – 옮긴이)의 서무(庶務. 특별한 명목[名目]이 없는 여러 가지 잡다한 사무 – 옮긴이)를 감독하는 직책인 보상(輔相)으로, 실질적인 수반이었으므로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런데 이와쿠라는 진짜 무쓰히토 왕자의 아버지인 고메이 왕도 독살했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작자다. 홋카이도 대학(흔히 ‘북해도[北海道]’로 불리는, ‘아이누 모시리’에 있는 왜국의 대학교..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5)

▶ 총리를 2명이나 배출한 조선인 부락, 다부세초 이제 이 미스터리(수수께끼 – 옮긴이)의 마지막, 하이라이트(highlight : 가장 흥미로운 부분 – 옮긴이) 부분을 파헤쳐볼 때가 되었다. 그것은 이 흑막(黑幕. ‘검은 장막’ → 드러나지 않은 음흉한 내막 : 옮긴이)의 시작 장소, 다부세초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여러 차례 다부세초가 조선계 부락이라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그러면 메이지 왕이 되었던 ‘오무로’도 조선인(근세조선 백성 – 옮긴이)의 후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일본 천황(일왕[日王]. 좀 더 정확한 명칭은 '왜왕[倭王]' - 옮긴이)들 거의가 백제의 직접 후손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덧붙이자면, 초기의 왜왕[倭王]들은 가야계/임나계고, 서기 4세..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6)

▶ 고이즈미 총리를 배출한 가고시마의 조선계 부락 다부세초 기이하게 가고시마에도 다부세라는 마을이 있다. 지금의 ‘미나미사쓰마’ 시(南薩摩 市[남살마 시]) 긴포초(金峰町[금봉정])다. 이 역시 조선인 부락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소천 순일랑. 서기 1942년 ~ ])’ 전 수상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 純也[소천 순야. 서기 1904년 ~ 1969년])’가 이 마을 출신이다. 고이즈미 준야는 중의원과 방위청장관 등을 지냈다. 그런데 준야는 가난으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쿄로 상경해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 又次郞[소천 우차랑])’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고이즈미(小泉)’ 성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준야는 결혼하기 전에는 완전한 왜인[倭人]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7)

▶ 대를 이을 능력이 없는 다이쇼 왕, 아버지를 닮지 않은 네 명의 왕자 메이지 왕이 바꿔치기 된 것이라는 얘기는 거의 확실한 사실인 듯한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소문이 따라다닌다. 즉 매독 감염설이다. 매독은 에도시대 개항과 함께(그렇다면, 서기 1868년 이후? - 옮긴이) 유럽 상인에게서 일본에 들어왔다. 메이지 왕(그러니까, 오무라 도라키치 – 옮긴이)이 매독에 걸렸다고 하는 이유(까닭 – 옮긴이)는, 그에게 5명의 친왕(왕자)과 10명의 공주가 있었지만, 거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첫째아들과 첫째딸은 둘 다 사산(死産. 죽은[死] 뒤에 어머니의 배 밖으로 나옴[産] - 옮긴이)이었고, 둘째아들과 둘째딸 또한 요절했다. (오무라의 왕비가 아니라 – 옮긴이) 궁녀 ‘야나기하라 아이코(柳原..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8)

▶ 쇼와 왕 히로히토 생모도 조선계? 데이메이 왕비 역시 명망가의 하나인 ‘구조’ 가문의 딸로 돼 있지만, 사실은 조선계인 ‘사다아키(朱貞明[주정명])’라고 하는 설이 있다. 메이지 정부는 도쿠가와 바쿠후(도쿠가와 막부, 그러니까 에도 막부 – 옮긴이)로부터 접수한 왕궁 ‘지요다 성’을 고급 유곽으로 삼았다. 유신(이 글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줄인 말 – 옮긴이)으로 인해 가계(家計. ‘집안[家]의 경영상태[計]’ → 살림살이/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방도나 형편/생계 : 옮긴이)가 기울어진 사무라이 자식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딸들을 뽑아 데려다가 메이지 왕 오무로(항간에는 무쓰히토로 알려졌던 ‘오무라 도라키치’ – 옮긴이)와 이로 히로부미 등 ‘친우(親友. 친한 벗/친구 – 옮긴이)’들이 놀았던 놀이..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9) : 끝

▶ 일본 천황이 된 조선인 소년에 대한 추억 ‘마스다 카스미(益田 勝實[익전 승실. 서기 1923년 ~ 2010년])’는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출신 국문학자로 ‘호세이 대학(法政大學[법정대학])’ 문학부 교수를 지냈다. 그는 조슈 번 가로​(家老. 왜국에서는 ‘다이묘의 중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다이묘 집안의 무사를 통솔하며 다이묘의 집안일을 총괄하는 직책이었다. 중세 때인 가마쿠라 막부 때에 나타난 직책이다 – 옮긴이)였던 ‘마스다’ 가문의 후손이었기에, 메이지 유신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한 예로, 그의 집안에는 고메이 왕이 사용하던 도자기 그릇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서기 1930년대 초? - 옮긴이) 한번 그가 이를 깨끗이 닦아버려 부모님에게서 호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고메이 ..

갈마(역사) 2023.11.03

[대일항전기]사촌누나 희롱한 일본인, 그를 향해 달려든 16살

-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 된 나주역 사건... 살아 숨쉬던 청소년들의 민족혼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29년 11월 3일 광주(오늘날의 광주광역시 – 옮긴이)에서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데요. 1953년 '학생의 날'로 제정되었다가, 1973년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 옮긴이) 정부가 폐지했습니다. 학생들이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다시 1984년 제11대 국회에서 '학생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부활하였고,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3.1 혁명 – 옮긴이), 1926년 6.10만세 운동과 더불어..

갈마(역사) 2023.11.03